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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한(百年恨), 중국인들의 올림픽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8-11 1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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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오후 8시 베이징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펼쳐졌습니다. 기원 700여년 전 서양문명의 원류인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된 올림픽이 기원 2008년 동양문명의 발상지로 자부하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으로 무대를 옮긴 것입니다.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이 다시 시작되고 112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입니다.

중국인들 스스로 100년을 별러온 잔치라고 말합니다. 그 100년의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듯합니다. 수천년 동안 찬란한 선진 문화를 꽃피우며 중화의 자부심을 지켜오던 중국의 전통왕조가 서구 열강의 침탈로 몰락하고 한발 앞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군국주의 일본에 의해 국토가 유린되는 고통과 굴욕을 당했습니다.

중국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유럽 제국은 모든 문물, 군사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중국은 코앞에 닥친 위기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식민지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뒤늦게 우매함을 탄식하며 양무운동(洋務運動)도 벌이고 자강운동(自彊運動)도 시도했지만 하늘도 천자의 나라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1912년 신해혁명에 의해 중화민국, 1949년 치열한 내부 권력투쟁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중국은 절치부심, 부국강병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발전의 방향이 이미 앞서 달려간 서구화(westernization)이고 그 속도나 크기를 재는 척도 또한 모두 서양의 것이니 그로 인한 굴욕감도 만만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흑묘백묘(黑猫白猫)’,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드라이브가 기대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당시 덩이 내세운 대외정책이 도광양회(韜光養晦)입니다.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국민총생산고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도, 칼날의 빛을 감추려고도 않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바로 중국인들이 대외에 공식적으로 그들의 커진 힘을 과시하는 행사장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이 1936년 베를린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발전상과 역량을 알리기 위해 12개의 경기장이 새로 지어졌고 11개의 경기장이 리모델링됐습니다. 올림픽을 위한 직접 투자액만 2800억 위안(약 35조원)이라고 합니다.

독특한 외관을 갖춘 메인 스타디움의 이름은 '냐오차오'(鳥巢), 새집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세계 80여 개국의 정상이 모였습니다. 마치 둥지를 찾아든 새들처럼. 후진타오 주석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후쿠다 일본 총리들을 단하에 거느리고 대회 개막을 선언하는 모습을 지켜본 중국인들의 감회가 어떠했을까요.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개막식은 차라리 중국인들의 한풀이마당처럼 느껴졌습니다. 올림픽 잔치의 즐거운 눈요깃거리도 세계인들을 위한 의미 있는 메시지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세계인민을 향한 대학습이 있었을 뿐입니다. 누구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그가 지루할 만큼 중국 옛 문화의 재현과 강조에 집착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극동에 숨어있던 작은 나라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말고는 그다지 알려진 게 없던 나라를 부지런하고 친절하며 질서 있고 가능성 있는 나라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에게 중국의 역량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직도 인권, 부패, 환경오염 문제들로 손가락질 받고 있긴 하지만 중국인들 스스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부심을 갖는 전기가 될 것입니다.

중국이 보여주고 싶은 건 과거의 찬란했던 문명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포츠경기에서도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세계 스포츠를 지배해온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고 금메달 종합 1위를 달성하겠다는 의욕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와 영토에 대한 욕심 또한 대단합니다. 지구상에서 3번째로 큰 땅덩이를 가지고도 영토 확장을 위한 분쟁에 양보가 없습니다. 동북공정으로 이웃나라의 속을 뒤집어 놓더니 최근엔 이어도에까지 시비를 건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베이징 올림픽의 슬로건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同一世界 同一想, One World One Dream)’입니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근대올림픽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또 개막식에서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데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며 세계인들을 환영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던 어느 방송인의 마지막 코멘트가 의미심장하게 들렸습니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의 거인이 아니라 세계의 거인이다. 그러나 몸집이 큰 거인이 아니라 마음이 큰 거인이기를 바란다.” 거인들과 이웃해 사는 나라 사람들의 정신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체육부장, 부국장, 경영기획실장과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을 역임했다. 여러 차례의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등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의 현장을 취재했고, 국제스포츠이벤트의 조직과 운영에도 참여하며 스포츠경기는 물론 스포츠마케팅과 미디어의 관계, 체육과 청소년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된 글들을 집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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