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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일의 즐거움
작년 가을에 숲으로 둘러싸인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한 후,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뒷 땅이 너무 숨이 막힐 것 같아 조그마한 정원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캐나다의 여름은 너무 짧아 금년 봄이 되어 눈이 녹기 시작하자 일을 시작하고, 우선은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정원용 게이트를 먼저 세운 다음 이든(Eden rose) 넝쿨 장미를 양 쪽으로 두 그루 심었습니다.
일을 시작해 보니 흙에서부터 문제가 너무 심각하였는데 집 짓는 업자가 전혀 물이 빠지지 않는 썩은 진흙을 채우고 잔디로 덮어 놓은 것입니다. 배수가 되지 않으니 잔디를 들어내고 모든 흙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엄청난 작업입니다. 흙을 파내서 버리고 좋은 흙과 모래를 섞어 메워야 정원수를 심을 수 있으니 이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큰 바위를 딱 한 개만 갖다 놓은 오른쪽은 모래와 작은 돌멩이로 가능한 한 단순하게 처리하고 하양 보라 두 색상의 화초와 키 낮은 상록수만 심어 동양적 냄새가 나게 하였으며, 왼쪽 게이트가 있는 곳은 아주 작은 로즈 가든(Rose garden)과 많은 화려한 꽃들을 심기로 하였습니다. 거기에다 8년 동안 찾았던 비너스 플라워링 독우드(Venus Flowering Dogwood), 캐나다에 와서 옆집의 담 너머로 네 잎 클로버 같은 꽃잎의 커다란 하얀 꽃을 본 이후, 계속 찾았던 나무 한 그루를 구 할 수 있어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릅니다. 마치 연인과 해후한 것 같았습니다.
이럭저럭 패티오(옥외에 앉아 쉬거나 즐기는 곳) 공간까지 끝내고 나니 그런대로 작아도 아담한 정취가 납니다. 뒷집들이 모두 트여 있는 동네인지라 이웃들이 자주 와서 같이 재미있어 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제게 “You like gardening? Don’t you?” (너 정원 일 좋아하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No, I don’t like gardening, but I would like to enjoy the garden.” (아니, 정원 일 싫어해. 즐기는 건 좋아)했더니 폭소를 하였습니다. 바쁜 시간 중에도 자주 정원에 사는 내 모습을 보아선지 그들은 제가 정원 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정원 일은 중노동이고 그래서 인건비도 가장 비싼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정원 일 하기가 너무 힘들어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번 정원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너무 힘이 들어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면서 이제는 이 정원이 마지막이다, 이것만 끝내고 다시는 정원을 만들지 않을 거야라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만 휑한 뒷 땅을 보니 또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원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곳이 아닙니다. 수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자리를 잡고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식목한 화초에서부터 작은 나무까지 식물마다 독특한 그 속성을 이해하고 적당한 수분과 영양제를 제 때에 주어 병들지 않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식물마다 잡초를 예방하며 월동용 멀취(화초 보호용 나무 껍질)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하는 일이 끝없이 많아도 오는 해의 큰 기쁨을 기대한다면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년에 기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맛있는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진리, 그리고 인내를 가르쳐 주는 것이 정원 일인 것 같습니다. 꼭 정원이 없어도 작은 땅이라도 있다면 식물을 키워 보는 일은 좋은 경험이 됩니다. 노동은 힘들어도 식물과 흙과 씨름하는 순간에는 무념무상의 시간에 빠져들어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습니다.
정원 일을 즐겨 했던, 정원이 문학과 철학의 산실이었다는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저서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에서 그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지. 불완전한 것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돼.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말지. 의지의 자유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주 샅샅이 연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원 일에 몰두해 보아야 한다. 누군가 어떤 나무를 골라 심었다 하더라도 그건 그의 자유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수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그의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바람, 추억, 필연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