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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함께 살기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8-03 17: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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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그맨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도 못 고치시는 병이 있나요?
-아암, 있지. 암.

인류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최대의 공포 대상이며 암을 정복할 수 있는 결정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망자 중 4분의 1은 암에 의한 것이고,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더 심각해 전체 사망자 약 3분의 1의 사인이 암이라고 합니다.

의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 발생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공업국가로 각광을 받기 전인 1950~60년대에는 먹고 살기에 바빠서였는지, 아니면 일반 국민의 의학지식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암에 대한 관심이나 공포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았습니다.

그 당시에 암이 지금처럼 세인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의 신문 부고란에는 거의 모든 분의 사인이 지병이거나 노환 숙환이었고, 교통사고나 그 밖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병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부고란에 이름을 올리는 사회명사의 경우가 이렇고 일반인의 경우도 구태여 사인을 밝히지 않는 것이 통례였으니 보건당국에 정확한 통계가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당시의 의학수준으로는 지금같이 속속들이 암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어리석은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암에 관한 세상 분위기가 그런 시기였던 30대 중반에 저는 뜻하지 않게 온 가족이 암과 처참한 싸움을 벌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시고 살던 아버지가 구강암(口腔癌)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어느 겨울, 가벼운 감기를 앓으신 뒤 입안에 좀 위화감을 느낀다 하셔 당시 서울역전에 있던 모 종합병원에 가 조직검사를 받은 후의 진단이 이것이었습니다.

암에 관해선 극히 상식적인 지식밖에 없었던 저는 매우 당황했고, 오늘날에는 거의 상식이 되어 있는, 환자 본인에 대한 고지(告知)를 어떻게 하나부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암 발병 곧 죽음이라는 등식이 상식적으로 통용하던 때입니다. 담당 의사는 노령을 이유로 수술은 피하고 그 대신 방사선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추천하는 대학병원 방사선 치료실에 몇 번 다녀오신 아버지는 곧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를 아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항암제는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담당 의사도 권하질 않기에 답답한 저는 도쿄 사무실의 친구를 통해 일본 어느 유명 대학교수가 개발한 학계 비공인 항암주사를 구입해 일 년 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맞게 해 드리고 그밖에 민간요법도 겸해 시도했습니다. 암 투병으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손실보다는 환자 자신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그리고 가족이 받은 충격과 고민이 이를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을 전후하여 가까운 친척 중 암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돌아가신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암에 대한 공포가 갑자기 저 자신을 휘감아 나날의 바쁜 직장 일 틈 사이에 암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고 지식을 흡수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암 보험이 판매되자 재빨리 가입했습니다. 당시의 암 보험은 지금과 같은 저축성 보험이 아니라 3년 또는 5년을 만기로 하여 그 동안에 암이 발생하지 않으면 불입한 돈을 한 푼도 못 찾는 제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당시 저는 아내 몰래 이 암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아내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을 매달 지출하는 것을 감추려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0년간을 무사히 지낸 저는 암에 대한 공포가 괜한 거라 생각돼 만기가 됐을 때 보험 연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번에는 아내가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위 전체를 들어내는 대수술과 입원비 등으로 상당한 경비가 들었지만, 이번에는 아내가 몰래 들었던 암 보험 덕택에 완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아내 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들었던 보험의 도움을 톡톡히 본 셈이지요. 아내는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아내가 그 일을 겪은 후 저는 다시 암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한 경제적 걱정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보험에 들어 있지 않으니 당연한 걱정이었지요. 그리고 보험 문제로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태껏 사고 없이 지내왔는데 보험에 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낙관적 생각과 그렇지 않을 경우의 두 가지 선택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던 어느 날 신문광고를 보니 제 나이에 가입할 수 있는 암보험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암 발생률이 가장 높아 보험회사까지 포기한 세대의 인생인데 그것도 모르고 고민하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나이에 새로 가입할 수 있는 일반 보험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뒤 늦게 안 저는 자기의 건강만을 믿고 보험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병에 대하여 긍정적인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자고 다짐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도 아직껏 100% 암을 예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암에 걸리는 것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고. 어느 일본인 암 전문의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즉, 다행히도 암 환자의 대부분은 임종 때까지 비교적 맑은 의식을 유지하며, 또 현대의학은 과거에 모두가 두려워했던 말기 암 환자의 감당하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획기적 의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일부 다른 노인성 질환 환자보다는 오히려 나은 삶의 질(better quality of life)을 유지하다가 떠난다는 것입니다.

근년에도 친한 친구 두 사람이 암으로 희생되었고, 다른 두 사람은 투병 중입니다. 일본의 최근 통계에 의하면 70세 남성의 암 발병률은 18%이지만 84세가 되면 46%로 뛴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암의 검은 그림자를 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암 전문의가 권유하듯 만일의 경우에 노인, 그것도 80대 중반의 노인으로서 배를 째는 등 사생결단의 투쟁을 벌이기보다 그 대신 암과 공생하는 소위 win-win의 조용한 길을 택해 여생을 마감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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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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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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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04 11:12:44

    저자의 이름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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