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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한다던데 들어 봤어요?”
“예, 봤어요. 벽보 붙여 논 거.”
“투표는 해야겠지요?”
“아유, 쓸데없는 말 시키지 마세요.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교육감이랑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떤 놈이 어떤 놈인지도 모르겠고...”
무더운 여름밤입니다. 방안 공기가 답답해 바람이라도 쐴 겸 나왔다가 이웃 구멍가게, 아니 마트 앞 간이탁자에 앉아 맥주 한 깡통 따 마시던 참입니다. 혼자서 암말 않고 마시기 뭣해서 주인에게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습니다. 공연히 존경스러운 후보자 선생님들 욕만 먹이고.
마트 주인은 그래도 예전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실력 좋다고 학원에 스카우트까지 됐었던. 한때 본인이 손수 학원을 열어보겠다고 나섰다가 춤추는 교육정책에 헛발을 디뎌 그만 꿈을 접었답니다. 그 후로는 마땅한 일거리 없어 빈둥거리다 호구지책으로 마트를 열게 됐던 것입니다.
이력을 따져 보아도 다른 사람들보다야 관심이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영 헛짚고 말았습니다. 사실 주변에도 정말 교육감 선거와 상관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아들딸들이 모두 장성해서 학교 마치고 직장 다닐 나이라면 학교 일에 관심을 둘 까닭이 없겠지요.
게다가 이번 선거의 후보들은 교육이라는 한 가지 분야만 파온 전문가들입니다. 일반시민들로서는 과연 그들이 누구인지 평소의 상식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국회의원 후보, 지자체 의회 의원 후보도 알쏭달쏭한 판에.
그래도 남녀 19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는 선거권이 있습니다. 서울시민 된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려면 반드시 모레(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투표해야 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선거권자인 일반시민들이 별 관심도 없고 정보도 없이 진행되는 선거. 봉사놀이나 다름없습니다. 영문 모르고 자던 사람 입에 밥술 꽂는 격이지요.
서울시 교육감은 이번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주민들이 직접 뽑게 됩니다. 종전엔 학교운영위 소속 학부모들과 교사, 교직원들의 이른바 간접선거로 뽑아 왔답니다. 그런데 교원단체들의 과도한 편싸움 등 폐해가 많아 주민 직접선거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서울시 교육청의 연간 예산은 6조원이 넘습니다. 교육감은 공립 초중고등학교 교사 임면권, 학교(특목고 포함) 신설과 정원 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점잖은 선생님들이라도 정말 물불 안 가리고 일전을 불사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일반시민들 가운데서는 교육감 선거 방식의 변화를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 보입니다. 선거날짜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서울시선관위가 주말 잠실 상공에 비행선을 띄워 투표율 제고를 위해 홍보했다지만 ‘도대체 그게 내 일이냐’는 시민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6명의 후보들은 지난 25일 금요일 낮 공영방송을 통해 겨우 한 차례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분초를 따지는 토론에 익숙지도 못하고 대처요령도 없어서 자기주장도, 질문에 대한 답변도 변변히 하지 못했습니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토론회였습니다. 그나마 평일 대낮에 서울시민 가운데 몇 명이나 지켜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주말 선거공보가 각 가정에 배달됐습니다. 주장하는 바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게 그것 같기만 합니다. 어느 한 후보가 ‘이번 선출되는 교육감 임기는 1년 10개월’이라고 밝힌 문구만 눈에 띌 뿐입니다.
실제로 이번 선거로 뽑힌 교육감 임기는 겨우 1년 10개월입니다. 2010년의 지자체 선거와 맞추려는 과도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시민들은 어느 자료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시교위나 선관위도 특별히 그 점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의도인지, 욕 얻어먹을 짓 한다고 염려한 때문인지 아리송합니다.
상황이 이런 데다가 주중 근무일에 치러지는 선거, 투표율도 뻔해 보입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부산이 15%, 충남은 17%에 그쳤습니다.
이렇듯 저조한 참여에도 주민 직접선거로 뽑은 교육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간선 때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관심을 가진 교원단체나 그 주변 단체들의 정략과 극성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간접선거 때의 폐해가 얼마나 사라질지도 의문입니다.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라고들 떠들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시민에게 내맡겨진 교육감 선거, 그나마 홍보부족으로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선거, 이토록 허술하게 진행되는 선거의 결과와 후유증이 걱정됩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체육부장, 부국장, 경영기획실장과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을 역임했다. 여러 차례의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등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의 현장을 취재했고, 국제스포츠이벤트의 조직과 운영에도 참여하며 스포츠경기는 물론 스포츠마케팅과 미디어의 관계, 체육과 청소년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된 글들을 집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