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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부부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7-26 09: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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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부부들



몇 십 년 전의 일이 요즈음 자주 머리에 떠오릅니다. 이곳 토론토에 사는 주부들의 삶과 갈등을 보면서 내가 LA에서 갈등을 겪고 살았던 젊은 날이 지금의 나보다 젊은 세대인 여기 주부들의 괴로움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그런 기억입니다.

육아와 살림, 집안 경제를 책임 지고 하루하루 고달픈 몸을 이끌고 살던 때인 어느 토요일, 남편이 근처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나간 뒤 청소를 하기 위하여 위층에 사는 아파트 관리인 방으로 진공 청소기를 빌리러 갔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아파트 문 밖의 돌 층층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청소기를 빌려 주려던 관리인은 청소기가 내게는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는지 아래층까지 들어다 주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는 척(Chuck)이라는 이름의, 키 작은 난쟁이로 남편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이었는데, 그 작은 키의 척에게서 가녀린 여자에게 무거운 청소기를 들려 보내지 않으려는 기사도정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층계를 내려가는 모습이 눈물겹게 보였을 뿐 아니라(청소기가 그의 키보다 더 컸음), 물론 힘든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이지만 집안일은 물론 청소 한 번 도와주지 않던 남편이 슬펐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주변에 이민 와서 사는 30대 후반~40대 중반의 부부들이 이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주부들의 불만이 많은데 남편들은 그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살림만 했던 주부들이 이곳에 와서 남편보다 직업 전선과 살림으로 더 고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주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은 직장에서 남편보다 더 스트레스 받고 직업병까지 있어 손목이 자꾸 나빠진다, 하루 종일 식당 주방에 서 있어서 발목에 피가 돌지 않는다, 그런데 집에 오면 남편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해준 밥 먹고 샤워하고 쉬는데(아들도 아빠 닮아 함께 쉰다 함) 나는 쉴 사이도 없이 밥하고 치우고 몸이 녹초가 된다, 남편과 아들이 설거지 청소조차 거들어 주는 것을 싫어한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집에서 살림만 했으니까 귀가한 남편을 편히 쉬게 했지만 이민 와서는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데도 가사 분담을 전혀 하지 않고 한국에서 하던 그대로만 하려고 한다, 이걸 불평하면 싸움이 되니 어쩌면 좋은가, 돈도 벌어야 하고 집안일도 완벽하게 편히 쉬게 해 주길 바라니 내가 무슨 기계인가, 무쇠덩어리인가?

가끔씩 주부들은 내게 얘기합니다. 남편이 남같이 느껴지고 정이 전혀 없다, 관심도 없다, 얼굴도 보기 싫다, 뒤통수도 보기 싫다, 아내가 설마 어디로 도망가랴 하고 생각하는지 불만을 얘기해도 듣지 않고 아직도 한국적 의식에 젖어 아내가 집안일을 소홀히 하면 죄인 취급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내를 자신의 부속품처럼 생각하고 아내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 생각만 강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40, 50대 한인 여성들 중 몇 명은 벌써 이혼을 했고 몇 명은 자식이 커서 독립할 때까지만 함께 살겠다며 이혼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내가 도망을 가 버려야 정신을 차릴 것이니 돈만 모아지면 단행하겠다고 벼르는 여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들은 이 심각한 사실을 마이동풍 식으로 넘기고 자신들 편한 대로 웃고 지나가고 있으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나 피곤하고 힘들면 쉬고 싶고 외로우면 이해 받고 싶어지며 고통스러울 때 고통을 나누고 위로 받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남편 아내,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일 것 같습니다. 부부가 서로 만나 사는 것은 자라온 다른 환경을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만 이해해 주길, 자신만 편안하길 바라며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가정의 화목, 가족의 건강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날 무리했기 때문에 그 당시 잃었던 건강은 회복이 어려웠고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그 때 조금만 나를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오늘의 지병을 앓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젊은 날에는 남녀 모두가 성숙되지 않기도 하여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함께 살아가는 반려의 건강은 바로 나의 건강입니다. 비록 내 몸이 아니기에 상대방의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 없다 하여도 눈만 보아도 반려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아픈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은 고생을 많이 하는 남편들의 부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 30, 40대 부부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삶을 답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즉 아내는 참아야 한다, 무조건 남편 말에 복종하고, 아내가 힘들어도 남편만은 편안히 모셔야 한다는 조선시대의 여성상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민 와서도 여유가 있어 직업전선에서 뛰지 않고, 골프장만 돌아다니며 소일하는 한국여성들도 남편들의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특히 고달픈 이민생활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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