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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나이가 아니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7-19 2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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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오관 기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젊은 시절에 익힌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는 그 요령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어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시도하는 데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다만 체력의 한계를 감안하여 무리하지 않도록 자제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고령자의 자동차 운전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고가 났다고 하면 당사자 뿐 아니라 제3자에 미치는 피해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여러 선진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고령자 운전에 의한 사고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여러 가지 이점 때문에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운전면허증에 대한 애착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저 자신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운전경력 근 50년이 되는 제가 현재 보유한 면허증은 1997년 3월 1일에 갱신 교부된 2종 면허증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그저 두꺼운 용지로 된, 좀 조잡한 증명서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이 때엔 현재의 주민등록증같이 말쑥하게 만들어졌고 관공서에 민원서류를 신청할 때 주민등록증 대신 쓸 수도 있게 됐습니다.

그 후 한 차례 적성검사를 받았습니다. 다시 검사기일이 가까워진 지난 해 초에 경찰서에서 공문을 보내와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적성검사 주기가 7년으로 연장됐으며 현재 가지고 있는 면허증은 2009년 3월까지 유효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동안 직장에 있을 때 구입해 약 10년 넘게 탄 차는 딸아이에게 넘겨주고 필요할 때엔 렌터카를 빌려 썼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외국 손님을 맞을 때 이외에는 차를 쓸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80대에 접어들 때 의당 고려했어야 할 고령자운전이라는 중요한 문제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80대 후반에 들어선 대학 선배 세 분을 모시고 렌터카로 세 번이나 국내 관광여행에도 나섰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한 선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리한 여행이 아니냐고 좀 소극적이었습니다만 제가 우겨서 세 번 다 무사히 여행을 마쳤습니다.

당연히 몸의 피로는 약간 느꼈지만 운전에 가장 중요한 시각과 청각에 자신이 있었고 순발력도 젊었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안전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손수 운전하며 선배들과 즐거움을 나눈 여행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스러운 사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으로부터 전화가 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친구는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자수성가해 기업을 일으켜 언젠가 우리 부부가 도쿄에 갔을 때 벤츠 250을 손수 몰고 관광지를 안내해 준 적도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말이 얼마 전 아이들에게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마저 빼앗겨 요즘은 친구 만나러 외출할 때에도 택시를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또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시력이 약해져 신문 읽기에도 어려움을 겪는 정도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이젠 운전을 포기할 때도 되었겠지 라고 한탄하는 것을 듣고 저도 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10월 낙조를 보겠다고 렌터카로 강화도에 1박2일 다녀 온 뒤 마음이 바뀌어, 아직 운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니 2009년의 적성검사까지는 받아 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고령자 운전에 의한 교통사고가 매년 증가세라는 것을 신문에서 본 뒤에도 크게 반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령 운전자의 수가 매년 늘고 있는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권장사항으로 시행해 온 ‘고령자 운전’이라는 표지의 부착을 최근에는 의무사항으로 변경하고 이런 차량의 추월을 법률로 금지했습니다.

내 친구 한 사람은 70세 이상 운전자에 의무화되어 있는 이 표지를 붙이고는 있지만 뒤에서 오는 젊은 운전자들이 추월 금지라는 법규를 잘 안 지킨다고 했습니다. 또 죽음을 연상케 하는 흑색 테로 둘레를 강조한 이 표지의 디자인을 싫어한다고도 했습니다.

일본의 현행 법규로는 운전자 적성 검사를 3년에 한 번씩 하게 되어 있고, 특히 70세 이상 고령자에겐 면허갱신 전에 약 1시간에 걸쳐 사고를 가상한 순발력 측정과 운전실기 실습을 실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엄격한 제도이지요.

저는 딸아이가 이 달 초 잠깐 외국에 갔다 오는 사이 집에 맡겨 둔 차를 인천공항까지 몰고 가 귀국 마중을 한 뒤에, 내년 적성검사까지는 받아보자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굳힌 상태입니다.

하와이에 사는 옛 직장 상사는 올해 88세의 나이에 1주일에 한 번 꼴로 호놀룰루 식당에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올 때 섬 북방에 있는 집에서 50km나 되는 거리를 매번 차를 몰고 온다고 다른 친구가 지난 주 메일로 전해왔습니다.

이 소식이 저의 결심을 더욱 부추기고 뒷받침해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건강은 변화무상하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겸손하게 대처하는 것이 저 자신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적성검사까지는 아직 10 개월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전에 대한 미련과 애착, 다른 한편으로는 고령자 운전의 위험과 안전문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런 엇갈림과 흔들림이 그때까지 계속될 것을 생각하니 요즘 날씨같이 좀 답답합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 TIME 서울지국 기자
-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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