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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석유 자원과 늘어나는 이산화탄소로 불안이 중첩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에겐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 게 더 큰 혼란을 몰고 올 것 같은데 인간에겐 내일보다 오늘이 다급한 것, 그래서 만인이 느끼는 위기의 강도는 줄어드는 석유 쪽이 훨씬 높습니다.
지난 주 일본 홋카이도 토야코(洞爺湖)에서는 G-8 정상 회의가 열렸습니다. 여덟 나라 국가원수든 이명박 대통령처럼 초청받은 국가원수든 석유 값 폭등으로 야기된 에너지 위기 때문에 머리가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미국 대통령보다는 후쿠다 일본 총리의 머리가 조금 덜 무거웠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에너지 위기에 대비했던 일본식 준비가 이제 효과를 드러내게 됐기 때문입니다.
7월 4일 뉴욕타임스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일본이 기울여온 에너지 절약 기술 투자효과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용광로탑과 파쇄된 암석을 실은 컨베이어벨트가 요란하게 움직이는 타이헤이요 시멘트공장은 꼭 산업혁명의 유물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방출되는 여열(餘熱)을 다시 전력생산에 재활용하는 이 공장 디자인은 현대적 에너지효율의 모델케이스로 아시아 여러 나라 기술자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고 있다.
일본은 철강과 같은 중공업분야의 에너지효율화 기술개발에 투자를 했고 그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72~2006년 사이에 일본의 제철업계에서만 에너지효율 기술개발에 투자한 액수가 450억 달러다. 그래서 일본 제2의 철강회사인 JFE의 케이힌 제철소는 전에 같으면 버려졌던 열을 수집하여 발전기를 돌림으로써 자체 전력 수요량의 90%를 충당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규모가 2배로 늘어난 ’70~’80년대 20년 번영기 동안 에너지 소비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일본은 동일한 경제활동에 에너지 소비는 미국과 유럽의 절반이고 중국의 8분의 1수준이다.
이제 치솟는 석유 값과 온난화위기를 안고 있는 세계를 상대로 일본은 고도화한 에너지효율 기술을 이용하여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후쿠다 총리는 ‘우수한 기술과 국민의 절약정신에 힘입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에너지효율화 사회구조를 갖추었고 세계에 공헌하기를 원합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저유가 시대에 준비를 시작한 일본이 고유가 시대를 맞는 모습입니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 이후 지난 25년은 약간의 높낮이가 있었지만 석유 값이 저렴하게 안정된 시기였습니다. 그 기간 중 일본은 비싼 비용을 들이며 준비했습니다.
일본 토요타는 미래 자동차산업의 모델로 떠올랐고, 미국의 GM은 커피전문 기업인 스타벅스보다도 못한 회사가치로 몰락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탄소경제’가 키워드로 떠오른 시대에 일본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 ‘조용한 혁명’을 쩨쩨하게 보았거나 아니면 간과했던 것은 아닐까요?
2005년 6월1일 이해찬 총리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이희범 산자부장관이 한 말이 기록으로 남이 있습니다.
“넥타이를 풀면 몸의 온도가 2도 내려갑니다. 2도가 내려가면 전체 정부청사의 전력가동을 줄여도 되고 170만 킬로와트의 전력이 절약됩니다. 이것은 원자로 2기가 돌지 않아도 되는 전력량입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습니다. 정부의 전력사용량이 줄어들었나요, 멈췄나요? 7월초 더위로 전력사용량이 사상 최대라고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습니다. 일본이 현장에서 에너지 효율을 실행할 때 우리는 마음에 없이 말로만 했던 것은 아닐까요?
필자는 얼마 전 우연히 경기도 안산시가 시행하는 ‘에버그린21’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에너지 절약, 에너지 효율, 대체에너지 개발을 종합한 탄소저감 정책입니다.
어느 지자체나 그 정책홍보 책자에 보면 온난화 대책, 에너지 효율화, 대체에너지 개발 등 환경항목이 줄줄이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 실행 의지가 의심되는 장식용 정책입니다.
안산시는 다릅니다. 홍보책자용 계획이 아니라 개념이 잘 정리된 액션플랜입니다. 2년 전 생태환경 도시를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던 박주원 시장은 당선 후 면밀히 세운 이 탄소 줄이기 프로젝트를 올봄부터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안산시는 환경문제를 관할하는 시청의 직제부터 뜯어고쳤습니다. 기존의 ‘환경관리과’를 ‘지구환경과’로 바꿨습니다.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지구환경과에 ‘온난화대책 담당’과 ‘신 재생에너지 담당’제도를 설치했습니다. 시청의 탄소 콘트롤 타워인 셈입니다.
그러나 시청직제보다 더 대담한 조치는 안산시의 환경보전에 대한 각종 지원 사업을 벌일 재단법인 ‘에버그린21’을 지난 봄 출범시킨 것입니다. 이 재단법인이 벌일 사업 중 하나가 환경인증제 업무입니다.
안산시에는 25만8천 가구에 75만 명의 인구가 삽니다. 가정, 기업체, 서비스업소, 학교, 공공기관 등 27만 4천 개소에 이르는 에너지 소비 주체가 있습니다. 이 소비주체를 대상으로 온실기체 감축이행 정도에 따라 등급별 인증을 부여하고 차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것이 환경인증제의 실행 전략입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7월 1일부터 연말까지 전력사용 절약 경연이라고 할 수 있는 탄소사냥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안산시는 온실기체 줄이기에서 나름대로 준비된 도시인 것 같습니다. 안산시가 이렇게 전국지자체 중 가장 앞서 나가게 된 것은 반월공단과 시화호의 오염사태를 겪으면서 그 시민들이 어느 도시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 분야에서 일본이 세계 선두로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세 가지라고 합니다. 즉 강제력이 수반한 정책목표, 석유에 대한 고율 과세, 그리고 국민적 합의 도출입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