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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은 참 작습니다. 손가락도 길지 않습니다. 더욱이 날씬하게 쭉 뻗어 있는 여성적인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러한 손을 곱게 간수한 적은 더더욱 없어 손을 예쁘게 보이려 매니큐어를 바른 적도 드물며, 손톱을 길러본 적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손을 예쁘게 보이려고 손톱을 기르고 색을 칠해 보았더니 작업하고 음식하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시기에 손가락을 1년간 쓰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생리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 고통을 겪던 어느 날 불현듯 “손가락이 재주있게 생겼네” “참 바지런한 손이네”하며 어느 분들이 칭찬해준 기억이 새삼 떠올라 함부로 마구 쓴 내 손에게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내가 아는 분들 중에는 많은 책을 쓰느라 손가락 검지 중지가 이상해진 사람, 패턴사로 가위질을 많이 하여 형태가 변형되어 있거나, 평생 직업인 조립하는 일로 손가락이 옆으로 휘어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나 역시 오랜 작업과 집안일로 손의 형태가 거칠어졌습니다만 그보다도 유난히 잊을 수 없는 손이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연고로 친해진 분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집에 오고 가고 내 사무실에서 담소하기도 했는데, 한 번도 그녀의 손을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손이 제 눈에 클로스업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은 노년의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녀의 손은 100세나 됨직한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도예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도예가였습니다. 그 손의 험하고 수많은 주름은 그녀가 오랜 시간 흙을 주무르고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구워낸 결과입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그 주름들은 작업의 연륜을 증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손이 추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경탄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손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집안일로 사랑을 심는 주부의 손, 땡볕에서 흙과 씨름하는 농부의 손, 끌과 망치로 조형의 미를 창조하는 조각가의 손, 먼지와 소음 속에서 톱질하는 목공의 손, 오랜 집필로 손가락이 변형된 작가의 손, 전지가위를 휘두르는 정원사의 손, 손가락이 생명인 연주가의 손, 수화를 하는 손, 그 손들은 그들의 삶입니다. 그 손이 외형적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그 손에는 그가 살아 온 흔적이 있고 그의 삶이 그 손에 있기에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손은 마음의 표정입니다. 손을 머리 위에 얹을 때, 바지 주머니에 지르고 있을 때. 토닥토닥 누군가의 등을 두드릴 때, 눈을 비빌 때, 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뒤로 모으고 있을 때 등등 매번 심상이 흐르는 초점의 동향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심코 움직이는 손의 방향은 우리 가슴 속에서, 머리 속에서 현재 무슨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하여 줍니다.
우리의 몸 중, 일생을 통하여 가장 수고를 많이 하는 신체 부분이 손과 발이 아닐까 합니다. 발은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평생의 수고로움이 많아 불쌍하고, 손은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일을 치러내는 나의 비서이자 삶의 공로자입니다. 이 손으로 얼마만한 일을 해왔는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불가사의하기만 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였는지 한 번 쯤 헤아려 보는 것도 손을 위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세수, 이 닦기, 머리 빗기에서부터 옷 입기, 콧물 눈물 닦기, 똥 닦기, 문 열기, 청소하기, 책 읽기, 글 쓰기, 그림 그리기, 차표 사고 지하철 손잡이 잡기, 운전하기, 도마질하기, 손잡기, 껴안아 주기, 그리고 사랑도 하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손은 평생 쉴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슬픈 운명의 지체입니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발이 쉴 때도 손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킨 대로 움직여 준다고 항상 만만하여 부려먹을 생각만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더욱이 어두운 일,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 평화를 해치는 일에 가여운 손을 이용해선 안 되겠지요. 사람들은 얼굴에는 온갖 호사를 시키면서도 손에 대한 사랑에 인색합니다. 얼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생 내 몸을 대신해 움직일 손입니다. 그에게도 많은 관심과 충분한 휴식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