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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대합실에서 남녀 흡연자들이 ‘유리 우리’에 격리돼 처량한 모습으로 담배를 빨아댑니다. 덕분에 공항 청사의 공기는 청정합니다. 서울 중심부를 걷다 보면 건물 앞에 나와 ‘불을 때는’ 남녀 사원들을 많이 봅니다. 매캐한 연기가 현관 주변으로 퍼집니다. 을지로입구 지하철역과 통하는 대형 건물의 선큰(sunken) 가든은 흔히 수십 명의 흡연자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지나갈 때에 눈알이 매울 정도라 계단을 뛰어서 얼른 지나갑니다.
서울시는 지난 해 버스정류장에서 흡연을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금연표지판을 설치하지 않았으니 흡연자는 어디에서나 많이 보입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흡연자가 있으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건 담배 냄새가 코로 스며들기 십상입니다. 흡연자는 서성거리면서 여기 저기에 담배 연기를 흩날리다가 버스가 서면 연기를 다 내뱉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올라타 차내에 악취를 풍겨대기도 합니다.
인도 북쪽에 히말라야를 머리에 이고 있는 나라, 부탄은 지구상 최초로 전국토가 금연입니다. 1972년에 국왕이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처음으로 주창한 나라답습니다. 뉴욕은 식당 등 공공장소가 금연이고 중동의 두바이도 공공장소가 금연인데 위반하면 최고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린답니다. 일본 동경의 치요다(千代田)구는 노상 흡연에 벌금을 부과한다죠. 이런 나라들은 국민건강을 배려하는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세금을 올려 아예 담배 한 갑을 약 1만원(1,000엔)으로 인상하자는 초당파 의원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담배인 ‘마일드 세븐’은 3,000원(300엔)인데 담뱃값이 영국의 5파운드(약 1만원) 뉴욕의 10달러(약 1만원)에 비해 너무 헐하다는 것이죠.
인상론자들의 시산에 의하면 담뱃값을 1,000엔으로 올릴 때 세수는 연간 최대로 약 95조원(9조5,000억엔), 설사 담배 판매가 3분의1로 줄어들어도 약 30조원(3조엔)은 늘어난다고 합니다. 일본의 흡연인구는 남성 40%, 여성 12% 선인데 1,000엔이 되면 80% 이상이 담배를 끊겠다고 합니다. 결국 담뱃값을 올리면 세수를 늘리고, 담배를 덜 피우게 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화에 기여하고, 돈이 없는 청소년들의 흡연을 막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는 것입니다.
흡연은 청소년들에게 더욱 나쁜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담배를 주는 군대에서 흡연을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은 돈으로 준다니 유혹은 많이 줄어들었겠지만 필자의 아이도 담배를 군대에서 시작해 아직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이런 악습을 조장한 것이야말로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넌센스이며 파렴치한 일입니다. 담배는 군대에서 아예 팔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나라 남성의 흡연율은 2007년 현재 43.4%로 여전히 OECD내에서 최고 수준이며 가장 낮은 스웨덴 15%의 3배입니다. 연전에 흡연 인구를 줄이기 위해 담뱃값을 5,000원으로 올리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역시 정치권이 우물쭈물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로도 담뱃값을 5,000원으로 올리면 77%, 6,000원으로 올리면 88%의 흡연 남성들이 담배를 끊겠다고 합니다. 살인적인 기름값을 비롯해 걸핏하면 모든 것을 국제가격으로 따지면서 담뱃값은 왜 비교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광우병 쇠고기 반대로 촛불시위가 한창이지만 확률로 보면 더 무서운 것이 담배죠. 병원에 가면 기본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담배 피우느냐, 끊었다면 언제 끊었으며 얼마동안 얼마큼의 양을 피웠느냐 아니던가요? 담배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것이죠.
우리나라 금연운동의 대부인 서울대 의대의 박재갑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흡연 관련 질병으로 매년 5만 명이 사망한다고 추정합니다. 박 교수는 온갖 발암물질의 보고인 담배를 만들지도, 팔지도 말자는 입법 청원서를 만들어 17대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17대 국회가 끝났으니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각종 질병에 대한 건강보험에 올해 4조원 이상의 재정을 보조합니다. 건강보험 의 적자를 막으려면 건강보험을 민영화할 게 아니라 먼저 국민들이 병에 덜 걸리도록 금연정책만이라도 강도 높게 추진해야죠. 언제까지 정부가 ‘세금 뜯는 재미’로 흡연자들을 길러가며 병 주고 약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간접흡연 피해를 방치하시겠습니까.
금연이면 금연, 자전거면 자전거, 대체 에너지면 대체 에너지, 건강과 친환경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들이 모두 합쳐져야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법인데 우리나라 정치는 뭐 하나 앞서 가는 데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땅은 되찾을 수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21세기 초 당신들은 뭘 했소 하고 물으면 후손들에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요새 텔레비전 광고를 보니 금연도 의사와 상담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좋은 묘안이 있죠.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의사와 상담하지 않고도 끊을 수 있는 것. 일본이 그렇게 하려는 것처럼 바로 담배에 대한 세금폭탄이 아닐까요?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