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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재앙
지구촌 곳곳에서 재앙이 끊이질 않는다. 인도양에서 발생한 초특급 태풍이 미얀마를 휩쓸어 수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독재와 빈곤에 시달리는 미얀마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번에는 중국 쓰촨성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여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그 처참한 현장을 차마 눈을 뜨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하루 빨리 재앙이 수습되고 그 상처가 아물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 가공할 재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살아 움직이는 지구 위에서 오직 인류만이 문명을 건설한다. 다른 종(種)
들은 모두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데 말이다. 문명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파괴를 수반하고 인류에게 교만을 키워준다. 문명에 앞서고 권력이 클수록 자연에 대한 겸손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다.
우리는 재앙으로부터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깨달아야 한다. 문명은 오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건설된다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
우월한 문명의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고 핍박하려해서는 안될 일이다.
나는 미얀마의 독재정권이나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이 재앙으로부터 인류 모두는 하나의 공동체이며 자기들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에 대하여 더 따뜻한 배려를 베풀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 바란다.
나는 2001년 쓰촨성을 방문한 일이 있다. 삼국지의 촉(蜀) 나라 근거지가 바로 이 곳이다. 수도 청두(成都)에는 유명한 제갈공명의 사당 무후사(武侯祠)가 있고 그 안에 유비의 묘가 있다.
중국이 개방 개혁을 추진한 이래 심천과 상해경제특구를 차례로 성공시킨 후 1999년부터 야심찬 서부대개발에 착수했는데 그 중심지가 바로 청두이다. 연이은 경제개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으면서 마침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인들에게 중화(中華)의 힘을 보여주려던 중국으로선 참으로 난감한 재앙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이 재앙으로부터 진정한 교훈을 얻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중국의 힘은 주변을 긴장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이미 압도적이다. 그 힘을 과시하려 할 필요가 없다. 주위를 안심시키고 주위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끌어낼 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약한 존재라 하여도 교만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저런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게 큰 지진이나 태풍은 없어도 자연이 주는 크고 작은 재난은 끊이질 않는다. 난데없는 국지성 해일이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조류독감이 만연하면서 축산농가는 물론 온 국민을 고통과 불안에 몰아넣는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쇠고기 협상의 본질은 실종되고 광우병의 공포가 자리를 잡아버렸다.
이렇게 바다(大海)에서, 땅(大地)에서, 공기(大氣)에서 문명을 위협하는 재앙은 계속된다. 또 언제 영화에서 보는 우주(宇宙)로부터의 재앙이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재앙은 당하는 사람과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필시 쓰촨성의 재앙은 곡물, 에너지, 건설자재의 파동(波動)을 몰고 오며 세계 경제에 큰 주름살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연대(連帶)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재앙을 막고 수습하는 일에 인류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철인 루쏘의 말을 상기하며 문명의 먼지를 털어내는 겸손을 깨닫게 된다.
2008. 5. 15
이 인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