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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기, 잘 죽기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5-30 1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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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지 266시간 만인 지난 23일, 돌기둥 아래 깔린 채 아내로부터 물과 음식을 공급받던 80세의 노인이 구출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전날에도 각각 92세와 84세인 노부부가 칭청산 정상 부근의 초가에 갇혀 있다 구출된 적이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노인들의 얘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노인들, 또 노인이 되어가는 동료들을 생각합니다.

1960년에 불과 52.4세이던 한국인의 평균기대수명은 2006년 현재 78.5세로 늘어났습니다. 사고와 사건으로 서둘러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회갑을 넘기는 이들 중 많은 수는 여든을 넘어 아흔, 백수(白壽)를 향해 삶을 계속합니다.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보니 세계 역사상 115세를 넘겨 산 남자가 3명, 여자가 20명이나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이는 에드나 파커라는 미국 할머니. 1893년 4월생이니 115세를 넘긴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괴테는 죽기 1년 전인 82세에 23세부터 쓰기 시작한 희곡 <파우스트>를 완성했고, 피카소는 만 91세로 죽기 전 몇 년 동안 수백 점의 그림과 동판화를 통해 신표현주의를 보여줌으로써 추상미술에 빠져 있던 20세기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길어진 노년은 기껏 권태로운 잉여 시간이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나날입니다. 경제력이라도 있으면 소일거리를 찾아 시간을 보내지만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조건이 열악한 노인에겐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엊그제 강원도 화천의 자택에서 목을 매어 3년 전 암으로 숨진 딸, 가수 길 은정씨를 따라간 84세의 길 모 할아버지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률은 1995년부터 10년 동안 인구 10만 명당 11.8명에서 26.1명으로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80대 노인의 자살률은 30.2명에서 127.1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자살성공률은 31.8 퍼센트로, 8 퍼센트에 불과한 다른 연령층의 자살성공률의 4배에 이릅니다. 20대에서 50대까지는 술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노인들의 자살은 충동성이 낮다는 것이지요. 자살의 주요 원인도 10대는 부모와, 20대는 연인과, 30대에서 50대까지는 배우자와의 갈등임에 비해, 65세 이상은 본인의 질병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자살자들 중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는 스코트 니어링입니다. 목을 맨 것도 아니고,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든 것도 아니니 자살한 게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 해도 자의로 떠날 시간과 방법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면 자살한 게 아닐까요?

니어링은 1883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중 아동착취 반대 운동을 하다 해직되었고, 톨레도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로 일했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에 항의하다 다시 해직되었다고 합니다. 1932년부터 아내 헬렌과 함께 버몬트와 메인 주의 시골에서 문명에 저항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다가 1983년 10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 헬렌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 보면, 스코트가 100세 생일을 한 달 반 앞두고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그 후로는 단단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동안은 아내가 만들어주는 과일 주스만을 먹다가 어느 날인가 이제 물만 마시고 싶다고 했고, 여전히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다 생일 지난 지 18일째 되는 날 “나무의 마른 잎이 떨어지듯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코트보다 21세 연하였던 헬렌은 스코트가 죽은 지 12년 후인 1995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코트는 80세 때인 1963년에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 5개 항목과 세부 사항으로 이루어진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어느 경우든, 삶의 모든 다른 국면처럼 환영해야 한다.”

니어링 부부의 삶과 죽음,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 급증, 이 두 가지는 언뜻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을 말해줍니다. 의미 있는 장수(長壽)를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니어링 부부가 실천했던 원칙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기, 깨끗한 양심, 바깥 일, 깊은 호흡, 금연, 간소한 식사, 채식주의. 빵을 벌기 위한 노동은 하루 반나절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쓸 것. 은행에서 절대로 돈을 빌리지 말 것. 하루에 한번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것. 커피, 차, 술, 마약, 설탕, 소금, 약, 의사, 병원은 멀리할 것.’

그 수도자 같은 삶의 보상이 무엇이냐고요? 그건 마지막 순간까지 맑은 정신으로 살다가, 자기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스코트처럼 정의롭게 산다면 특별한 보너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의 100번째 생일에 이웃 사람들이 들고 온 깃발에 쓰여 있었던 한마디 같은 것 말입니다. “스코트 니어링이 100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되었다(100 years of Scott Nearing has left the world a better place.).”







필자소개



김흥숙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기자,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코리아타임스에 "Random Walk"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김 태길의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을 영역한 것을 비롯, 1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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