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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흑인 대통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들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앉는 날이 오리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45년 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링컨센터에 모인 수많은 군중 앞에서 그렇게 자신의 꿈을 피력했습니다. 1963년 8월 워싱턴D.C.를 향한 평화 대행진에는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어 진정한 자유의 실현을 희망하는 25만 여명의 흑백 시민들이 참여했습니다.
한 때 남북전쟁의 격전지였던 조지아의 주도 애틀랜타 중심가 남쪽에는 예전 흑인노예들을 벌거벗겨 세워놓고 흥정하던 지하시장 언더그라운드가 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번애비뉴를 따라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마틴 루터 킹 비폭력사회개혁센터와 킹 목사의 생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생전의 킹 목사의 연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귀성과 귀경 전쟁이 벌어지던 설 연휴 동안 태평양 건너 미 대륙에선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으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놀라운 건 민주당의 신진 ‘벼락 스타’ 오바마의 약진입니다. 소위 말하는 ‘슈퍼 화요일’의 대회전에서도 힐러리와의 선두 다툼에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습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느 나라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이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전 세계 모든 이들의 관심사입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8년에 식상한 데다 심각해진 경제 상황, 테러와의 지루한 전쟁 등 여러 요인들로 올해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한결 유리한 입장입니다. 그런 판국에 뛰어든 1번 주자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요, 2번 주자가 46세의 젊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입니다. 힐러리가 이기면 첫 여성 대통령이, 오바마가 이기면 첫 흑인 대통령이 될 판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민주주의 맹주로 자부하는 미국에서도 전국적으로 여성이 선거권을 행사하게 된 것은 겨우 약 90년 전 일입니다. 더구나 흑인이 실질적으로 선거권을 얻은 건 40년여 전에 불과합니다.
킹 목사가 인권운동을 벌이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흑인은 백인과 같은 버스 좌석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레스토랑에 앉아 밥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킹 목사는 그런 불평등과 맞서 싸운 공으로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또 그 싸움을 계속하다가 1968년 41세의 한창 나이에 암살당했습니다.
킹 목사가 떠난 지 40년. 미국민들은 지금 첫 흑인 대통령후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3억 인구의 미국에서 흑인 비율은 15% 정도. 오바마는 의외로 백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 영향력이 큰 에드워드 케네디, 존 케리 등의 지지 선언은 의미심장합니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이 아니면 안 된다던 미국의 전통적 주류사회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입니다.
검은 대륙의 케냐에서 하와이에 유학 왔던 흑인 목동의 아들, 시카고 상원의원 8년 경력에 겨우 4년 전 연방 상원에 진출한 풋내기가 과연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흥미진진합니다.
민족의 명절이라는 설 연휴에 수많은 도회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선 적지 않은 수의 이방인 며느리들이 서툰 솜씨로 차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고수머리 2세들도 소개되었습니다. 우리도 본격적인 다인종 사회, 다민족 시대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와 사회 변화에 걸맞은 문화의식을 길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