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의 손가락을 자르는 선거법
자유칼럼은 출범 때부터 균형 잡힌 시각과 절제된 표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자유칼럼의 성격과는 달리 오늘 좀 과격한 표현 하나를 쓰려합니다. 그것은 현행 공직자선거법 제93조가 ‘전대미문의 악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은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동시에, 헌법24조의 참정권마저 침해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이런 악법은 즉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되돌려 주고, 국민들이 자유스럽게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길을 터줘야 합니다. 차제에 국민들은 조금만 방심하면 정치권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이런 해괴한 악법도 뚝딱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경각심을 높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행법은 ▲선거운동기간(11.27~12.18)전에는 특정 정당이나 입후보예정자에 대하여 지지. 반대하거나 지지. 반대를 권유하는 글을 인터넷상에 올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 다른 사람이 게시한 이런 글을 퍼 나르는 경우에도 게시자와 함께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인터넷 포탈이나 인터넷 언론매체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댓글을 이 법에 비춰본다면 8할 이상이 위법입니다. 예컨대 인터넷에 “나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혹은“나는 이해찬 후보가 싫다.”라고 단 한 줄만 써도 범법자가 됩니다.
오늘 현재 각 대통령 후보들의 홈 페이지에 게시된 지지자 혹은 반대자들의 의견 역시 8할 이상이 실정법 위반입니다. 각 정당의 홈페이지나 수많은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개설한 홈페이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쓰는 것은 이 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범법자가 너무 많아서 정부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는 배짱 때문입니다.
묻지 않아도 왜 이런 악법이 생겨났는지를 짐작할 것입니다. 2002년 대선에서 예상 밖의 큰 힘을 발휘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습니다. 기성세대는 인터넷의 위력 앞에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에 대한 기성세대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고 그 결과 이제는 네티즌의 상당부분이 40대 50대 이상의 어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국민을 제3의 물결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 셈입니다. 5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변화입니다.
그러나 유독 정치권만은 대응이 퇴행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공직자선거법 93조라는 악법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어느 세력이 중심이 되어 그런 법을 만들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그들은 인터넷만 묶어두면 진보세력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사법당국이 이 법을 앞세워 네티즌들을 단속한다면 필경 인터넷상에서 의견개진이 엄청나게 위축될 것이니까 그들의 계산은 정확히 맞아 떨어진 셈입니다.
이 법은 그동안 자유로운 정치여론을 형성함으로써 한국정치에 진보의 새바람을 불러온 인터넷 공간에서의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독소에 다름 아닙니다. 이 법은 네티즌의 손가락을 자르는 악법입니다. 만약 이 법의 정신이 정말 옳은 것이라면 후보에 대한 의견표현을 인터넷에서만 금지할 것이 아니라 종이신문에서도 금지해야하고 포장마차에서 주고받는 시민들의 말도 단속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정부는 젊은 세대들의 자유스러운 의견개진을 인터넷 상에서 허용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을 훈련시켜야 하며 그들의 자발적 정치참여를 장려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발표하도록 터주되, 다만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의도적으로 과장된 정보를 게시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엄격히 묻도록 법을 고쳐야 합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헌법재판소가 쥐고 있습니다. 이미 시민단체들이 이 악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서둘러 이 문제에 대한 평결을 내린다면 네티즌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살아있음을 헌재(憲裁)가 국민 앞에 속히 보여 주기를 기대합니다. 선거가 끝난 다음에 이 문제를 평결하면 그야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어 헌재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니까요. 글 앞머리에 자유칼럼으로서는 ‘과격한 표현’이라고 썼으나 네티즌들이 본다면 이게 무슨 과격한 표현이냐고 불만을 터뜨릴 것이라는 사실도 헌재가 알아두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