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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는 혈기와 용기가 있어 좋았습니다. 시간이 날 때는 일용품 몇 가지, 소형 카메라 그런 것들만 챙겨 들고 어딘가로 떠났습니다. 산으로 들로 바다와 도시로 발걸음 가볍게 다녔습니다. 눈이 덮인 협곡에 막혀 헤매고, 살인적인 더위에 숨쉴 수 없는 사막, 죽음의 계곡에서 차가 서 버리고, 쉴 새 없이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구토를 하면서, 끝없이 펼쳐진 황야에서 길을 잘못 들어 떠돌 때도 조금도 무섭지 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여행이 병이 되어 몇 개월 견디다 답답해지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야 합니다. 갑자기 침체된 내면의 공기가 싫어지고, 주변에 어른거리는 싱그럽지 못한 사람들과의 불협화음이 싫을 때는 더욱 떠났다 돌아와야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느 도시로, 혹은 시골로 자연으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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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짐을 싸고 떠나다 보면 어느새 몸은 사막지대 아니면 바닷가 혹은 벌판, 결국은 대체적으로 종착지가 국립공원이 되곤 합니다. 그곳은 국립공원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는 만큼 우리를 매료시키는 흔치 않은 풍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천지가 흰 눈에 덮인 신화 같은 설경 속에서 눈사람이 되어 걸었던 요세미티 국립공원, 길이 막힌 무서움도 잊어버린, 협곡의 눈 봉우리를 이고 서 있던 아름다운 유타 주 내셔널 모뉴먼트 그리고 그랜드 캐년의 노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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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알프스들에 둘러싸인 인터라켄의 튠 호수, 그륀델발트에서 벵겐까지의 작은 산길을 터덜터덜 걷다가 다리가 아파 주저앉아 버리고, 오스트리아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모차르트의 고향 옆 잘츠감마구트에서 차 한잔의 시간, 오슬로에서 플롬베르겐 왕복을 흰 눈 속에 달리던 기차 안의 추억, 자연의 모든 것이 갖춰진 캐나다의 밴프 재스퍼 쿠트니 국립공원, 완도에서 보길도를 가던 갑판에서 예냐( Yena)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던 행복감. 섬진강을 따라 펼쳐진 지리산 국립공원, 끝없는 능선이 펼쳐지는 천왕봉 횡단(이루지 못한 소원)은 못했으나 노고단의 운무는 감상했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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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해외가 아니라도 생소한 곳으로, 시간 속으로 새로운 경험을 찾아 홀로 떠나 보는 것도 향기롭습니다. 지나쳐 가는 장소마다 자신의 감성을 곳곳마다 대입해 보는 것은 삶의 수업이 되는 일입니다. 어느 낯선 곳에 떨어져,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숙소를 찾지 못했을 때,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와 갑자기 적막함에 휩싸일 때,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버린 거리에서 인적도 없는 밤길을 허름한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 피부 색깔 생김 다른 인종이 가득한 열차 안에서, 아무도 없는 이국의 텅 빈 기차역 앞에서 갈 곳 몰라 서성거릴 때, 내 언어와 내 모습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탈출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여행이란 가까운 친구 가족 혹은 연인과 한다는 것이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홀로 나그네가 되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그만 못지않습니다. 일상사에서 멀리 혼자 있음으로 하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잠시 잊고 지낸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도 하고, 신선한 충격과 뜻하지 않은 아름다운 우연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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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들은 캐나다 밴프 재스퍼 국립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