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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소설가 박경리씨가 모 일간지와 인터뷰한 기사가 생각납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땅이 해충에 대항할 힘이 생기고, 작물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거든. 그런데 유기농을 시작하는 데 뒷받침이 없으니 농민들이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불쑥불쑥 화가 치미는 건 우리의 가장 근본인 땅을 살리려는 정치가가 한 명도 없다는 거예요.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그러니 자연히 농민들의 죄의식이 없어지고 수확하기 위해 농약을 쓰고 하는 일이 합리화돼버리지. 죽은 땅도 땅이지만 정신이 죽은 게 제일 마음 아프지."
이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황새를 복원하기 위해서 농촌에 가서 농민들을 만나고, 또 직접 황새 인공서식지 내에 유기농 논을 조성하면서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황새 살리기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땅을 일구어온 우리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 정신을 다시 살릴 방법이 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즘 쌀값이 시원치 않아지자 농민들이 논을 인삼밭으로 많이 바꿨습니다. 인삼밭이 너무 많아 황새를 자연에 풀어도 인삼밭에 내려앉을 수 없으니 이를 어쩐담.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인삼밭에 살포되는 농약은 논에 뿌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라는 것입니다. 인삼밭 주인에게 “직접 먹느냐?” 고 물었습니다. 인삼밭 주인은 “나는 인삼에 약을 많이 치는 것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인삼을 안 먹습니다.” 그 후 내 연구실에 있는 선물로 받은 인삼 가공식품을 모두 내다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삼밭에 뿌려진 농약이 기준치 이하이긴 해도 수은제가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수은 중독량은 심각합니다. 1인당 평균 혈중 4.5마이크로그램으로, 이 수치는 독일사람의 3배, 미국사람의 2배가 됩니다.
농약의 폐해는 금방 나타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30-40년이 지나야 나타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정자운동성을 조사한 결과가 농산물에 들어 있는 농약의 노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1년 조사에는 정자운동성이 73%였는데 6년 후 지금은 48%가 못 된다고 합니다. 성인들의 정자 수 감소도 심각합니다. 40년 전과 비교해서 42%나 감소했다니, 요즘 젊은 층에서 불임의 수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를 스트레스로만 탓하기에는 너무 옹색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우리나라는 농약 사용량에서 세계적으로 으뜸 국가입니다. 캐나다의 21.3배, 뉴질랜드의 12.8배, 미국의 5.5배, 일본의 3배가 된다고 합니다. 이 농약 대부분이 미국에서 들어온다는데, 미국은 정작 사용량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생산한 농약의 주요 소비국이라고 합니다.
흔히 국민의 건강 척도를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으로 판단합니다. 평균수명에서 건강수명을 빼면 병들어 사는 나이가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13년 동안 병들어 살다가 죽는데, 미국과 일본은 병들어 사는 기간이7년과 6년으로 우리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농약에 오염된 농산물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가 쟁기로 논을 갈던 시절, 농산물의 생산량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이런 걱정은 없었습니다. 논에 약을 치지 않으면 몇 년간은 농사가 되지 않아 모두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기농사가 이렇게 어려운 거죠.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데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해 유기농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 박경리씨가 정치가들에게 그런 쓴 소리한 것도 이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땅을 살려야 바로 국민이 건강할 수 있는데, 이렇게 중요한 것은 안중에도 없으니 나도 화가 치밉니다. 나는 생산이 끝난 나이지만, 지금 젊은이들을 보면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물론 지금 오리농법이다 우렁이 농법이다 해서 유기농 한다고 하지만, 그 농사법은 진짜 유기농이 아닙니다. 오리의 배설물로 인한 부영양화(富營養化)나 외래종인 우렁이로 인한 생태계의 문제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 가능한 방법은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방법은 바로 황새가 살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일입니다. 땅 힘을 길러 논에 많은 생물이 다시 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황새를 살리는 것은 희귀한 조류 한 종의 복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살리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과학의 힘으로 황새를 복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냥솜씨가 서툰 이 바보 황새를 살려낼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논에 지천으로 생물들이 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바보 황새가 살아갈 수 있는 자연, 바로 이런 환경이 우리 몸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연 아닐까요?
박시룡 :경희대 생물학과 졸, 독일 본대학교 이학박사.
현재 한국교원대 교수ㆍ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소장.
대표 저서「동물행동학의 이해」, 「과부황새 이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