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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범려,백비 그대는 누구인가?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09-05 12: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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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과 취리에서 싸워 패하였다, 그 전투에서 합려는 적이 쏜 화살에 손가락을 다쳤는데 간신히 몸을 빼어 형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상처가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죽음에 임하여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반드시 월나라에 복수할 것을 유언하였다,
합려를 이어 왕이 된 부차는 아바지의 유언을 잊지 않기 위해 섶[臥(덧말:와)薪(덧말:신)에]위에서 잠을 잤다
또 사람을 시켜 자기가 출입할 때 마다 뜰에 서서 “부차여,아비를 죽인 월왕을 잊었느냐 ‘하고 외치게 하였다, 그때 마다 ”잊지 않았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 준비하고 있는데 낌새를 눈치 챈 구천이 먼저 공격해 왔다,
두 군대는 부초산 에서 결전을 벌였는데 결과는 부차의 승리였다,
구천은 패군을 이끌고 회계산에 숨었고 월군은 산을 포위 하였다 사세가 rq해진 구천은 항복하기로 하고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 뇌물을 주어 사전 공작을 한 다음 항복할 의사를 전하였다,
오나라에서는 선왕의 원수인 구천을 죽여야 한다는 논의가 빗발쳤지만 백비만은 구천을 용서할 것을 주장하였다, 부차는 백비의 의견에 따라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였는데 구천으로서는 비록 목숨은 건졌다 고는 하나 항복조건은 매우 비참하였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오왕 부차의 종이 되어야 했다, 자신 뿐 아니라 왕비인 아내까지도 종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구천은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는 일념으로 항복 조건을 수락 하였다,
적국으로 가기에 앞서 구천은 신하들과 울며 작별을 하였고 신하들은 저마다 왕이 돌아올 때까지 나라를 잘 지키고 군대를 양성하며 백성들을 진무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구천이 물었다,이번길에 누가 나를 동행하여 수종하겠느냐?또 누가 나라를 능히 잘 지켜 나를 기디리겠느냐?
문종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백성을 다스리며 나라를 지키는 데는 범려가 신만 못하옵고 대왕을 수종하며 일을 주선하여 임기응변하는 데는 신이 범려만 못하옵니다,
범려도 말하였다,
문종의 말이 옳습니다,주군께서는 문종에게 나라를 맡기고 떠나십시오 저는 욕을 참으며 주군을 보좌하겠습니다,
마침내 월왕 구천은 아내와 함께 범려 한사람만을 대동하고 적국으로 향했다,
강가에서 배웅하던 군신들 중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지만 결심이 사무친 구천은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구천은 오왕 부차 앞에 이르자 엎드려 절하고 아뢰었다, 동해의 작은 신하 구천이 절하옵니다,제가 이미 죽을 죄를 지었사오나 대왕 옆에서 쓰레질이라도 하면서 목숨을 보전하기를 청하옵니다,
부차가 말하였다,
선군의 일을 생각할 때 그대는 살기를 바랄 수 없다
구천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하였다,“신은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대왕께서는 불쌍히 여겨주십시오,오왕의 대신들간에는 구천을 죽이자커니 살리자커니 하는 논의가 일어났다,이를 예상하고 구천은 ,떠나기에 앞서 월나라 미인 320명을 뽑아 300명은 오나라 왕실에 20명은 백비에게 헌납한바 있었다, 백비는 뇌물을 받았는지라 ,구천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말이 받아들여져 구천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오왕은 구천에게 말을 돌보는 직책을 주어 선왕인 합려의 무덤가에 있는 석실에서 살게 하였다,구천은 하루아침에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의관을 차리지 못하고 봉두난발로 지내야했다, 먹고 입는 것 또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백비가 가끔 음식을 챙겨주었기 때문에 그렁저렁 지탱해 가고 있었다,
구천은 석실에서 두 달을 머물렀는데 오왕이 그곳을 방문하면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수종하였다, 또 오왕이 행차를 할 때면 아내와 함께 맨 앞에서 걸어갔고 그때의 태도 또한지극히 유순하고 공손하였다, 오나라 백성들은 구천을 손가락질하면서“ 저자가 월왕이래! 부끄러움도 모르고 종이 되어서 까지 목숨을 구걸하는군, 하고 수근거렸다, 구천은 가슴속에 원한이 사무쳤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오왕은 구천을 살려주기는 했지만 그의 속내가 궁금하였다,그래서 몰래 사람을 보내어 구천의 평소 행실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구천의 행실에서 흠을 잡을 구석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탐꾼의 말로는 구천은 누가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묵묵히 노역에만 충실할 뿐 결코 오왕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오왕은 구천에 대해 믿고 안심하게 되었다,그러던 어느날,오왕 부차가 높은 누각에 올라가 멀리 아래를 바라보니 말똥더미 옆에 있는 구천부부가 보였다,마침 쉬는 중이었는지 구천 부부는 단정히 앉아 있고 그 옆에서 범려가 말채찍을 들고 수종하고 섰는데 비록 노비가 되었다고는 하나 부부간의 그리고 군신간의 예절이 분명하였다,
오왕이 옆에 있던 백비에게 말하였다,“저 월왕 부부와 범려는 궁지에 빠졌는데도 예를 잃지 않으니 군자라 할 만하오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는구려”
기회를 잡은 백비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거룩한 마음으로 외롭고 궁한 구천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졸겠습니다, 구천을 놓아 보내면 우러나라 사람들이 감격하여 대왕을 더욱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오왕이 말하였다, “길일을 택하여 그를 보내도록 하오”
그러나 그 결정이 오나라의 오자서에게 알려지자 오자서가 구천의 송환에 극력 반대 하였다,그 때문에 오왕은 마음이 변하여 풀어주려고 불렀던 구천을 다시 석실로 돌아가 대기하라고 일렀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곧바로 오왕이 병에 걸려 자라에 누웠기 때문에 구천의 귀국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을 때 범려가 구천에게 말하였다,
“제가 점을 쳐보니 오왕은 아무아무 날에 완쾌하겠습니다, 주군께서는 오왕을 문병하고 그 대변을 맛보십시오,그런 다음 오왕의 안색을 관찰하면서 아무 날 완쾌하신다고 말하면 오왕은 감동하여 주군을 풀어줄 것입니다, 구천이 탄식하였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던 왕이었는데 어찌 남의 대변을 맛보겠는가? 범려가 구천을 달랬다,”옛날 주왕이 서백을 가두고 그의 아들 백읍고 를 삶아 먹이자 서백은 아들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은 작은 부끄러움을 사양치 않는 법입니다, 오왕은 아녀자의 어짊이 있을뿐 장부의 결심은 없어서 용서했다가는 곧 마음이 달라지곤 하니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구천은 범려의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그날로 입궐하였다, 구천이 오왕의 침실로 들어가자 오왕이 고맙게 생각하여 물었다, “그대가 내 병을 근심하여 와주었구나 ”월왕 구천이 엎드려 아뢰었다,“대왕의 용체 미령하심을 듣고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마침 오왕이 설사를 했다, 구천은 곧 “신이 동해에 있을 때 의사로부터 설변을 보고 병의 차도를 알 수 있다고 들었사온바 한번 맛을 볼까 합니다, 하고는 곧 내려가 변기에서 변을 찍어 맛 보았다,그러자 좌우가 모두 얼굴을 찌푸렸지만 구천은 내색 없이 태연하게 오왕 앞에 꿇어 앉아 말하였다,
“대왕께 경하드립니다,대왕의 병환은 임신일 에 완쾌될 것입니다,
오왕이 반기워 얼른 물었다,
“어떻게 아는가?” “신이 들은바에 따라 맛을 본즉 대왕의 대변은 쓰고도 시었습니다, 이는 봄과 여름에 발생하는 것에 응하는 것인바 이로써 알았나이다,
오왕은 크게 기뻐하는 한편 감탄해 마지 않았다,
“참으로 갸륵하지 않은가 ! 누가 대변을 보고 나의 병세를 말한단 말이냐 ?”
오왕은 백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경은 능히 대변을 맛볼수 있겠소?”
“맛볼수 없습니다” 경뿐 아니라 태자라도 이는 불가할 것이오 “
오왕 부차는 곧 월왕 구천 부부를 석실에서 편란 처소로 옮겨주었을 뿐 아니라 임신일에 쾌차하면 귀국시켜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였다,구천은 재배하고 물러 나온 다음 여전히 말치는 일에 열심히 임하였다, 오왕의 병은 과연 구천이 에언한 날에 완쾌 되었다,
오왕은 매우 기뻐서 구천을 맞아들여 좋은 옷을 입히고 자기 신하들에게도 공대하게 하였다, 구천은 오왕에게 찬사를 올리면서 연거푸 술을 올리며 축수하였다,
일이 이에 이르자 상국 오자서는 구천의 본심을 간파하고 오왕에게 구천을 살려 보내지 말것을 다시 한 번 극력 주장하였다,
그러나 백비가 구천 편을 들어 마침네 구천의 귀국이 결정 되었다, 떠날 때 오왕이 구천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사하여 귀국시키니 그대는 이 은혜를 잊지 말라”
구천이 절하고 말하였다,
“대왕께서 하늘같은 자비로움으로 저를 불쌍히 여겨 귀국케 하시니 저는 전심전력 보은할 뿐이옵니다,
오왕은 자못 자부심을 느끼며 구천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군자는 한마디로 일을 결정하는 법 ,그대는 갈지어다,!“
그리하여 구천은 마침내 원수의 손에서 풀려나게 되었다,그러나 주도면밀한 그는 본심을 감추고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구천이 계속 눈물을 흘리며 머뭇거리자 오왕은 친히 구천을 수레에 오르게 하여 떠나 보냈다,
구천이 아내와 범려를 데리고 3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오자 문종이 고관들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강가에 나와 영접하였다,
그들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환호를 질렀고 구천 또한 감동하여 눈물을 흘려 마지않았다,
월왕으로 지위를 회복한 구천은 돌아오자마자 성을 쌓기 시작 했는데 서북쪽만은 쌓지 않고
말하였다,
‘내가 이미 오나라에 신하가 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감히 공물 바칠 쪽에 성을 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그쪽으로 오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이 었다,월왕 구천은 문종에게 내치를 맡기고 범려에게는 군대를 기르게 하였다, 그는 기거하는 곳에 쓸개를 달아놓고 식사를 할 때마다 반드시 그 맛을 보며 오왕에게 당한 치욕을 되새겼다[嘗(덧말:상)膽(덧말:담)]
월왕의 부인도 왕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 스스로 베를 짜는 등 백성들과 고초를 함께 하였다,월왕은 7년 동안 세금을 거두지 않았고 육식을 먹지 않았으며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나라에는 문안인사를 한번도 거르지 않았으므로 오왕은 월왕을 신임하여 땅까지 떼주었다, 월왕 구천은 본심을 더욱 위장하여 갈포 십만필,여우가죽 다섯쌍,진나라에서 난 대나무 등을 오나라에 상납하였는데 구천의 본심을 눈치채지 못한 월왕은 기뻐하여 마지 않았다, 또 구천은 문종의 계획에 따라 둘레 스무 아름에 길이가 쉰 길이나 되는 거대한 나무를 벌채하여 오나라에 보내면서 말하였다,
“이 나무는 제가 궁전을 짓는 데 쓰려 하였으나 재목이 너무 커서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마땅히 오나라 같은 대국에서 써야 할것입니다,“
마침 오나라에서는 거대한 궁궐을 신축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이용하여 오나라의 국력을 낭비케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때에도 오자서가 월왕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받지 말 것을 권하였지만 오왕은 듣지 않았다,구천은 또한 미녀들을 헌납하여 오나라의 정사를 문란케 하기로 하고 전국에서 미녀를 뽑앗는데 서시와 정단 이 뽑혔다,
서시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도 드물게 보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릴 때 특히나 매력적이어서 어떤 추녀가 그것을 흉내내어 사람들이 웃었다는 일화로써 더욱 유명한 여인이다,월왕은 두 여인을 별궁에 두고 미인을 구경할 사람에게 돈 1문씩을 받았다,그러자 백성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돈 궤짝이 금방 가득 찼다,마치 선녀가 하강한 듯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월왕은 그녀들에게 3년 동안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또 어여쁜 여인 여섯 명을 더 뽑아 이들을 시중들게 하였는데 이들은 항상 화려하게 꾸미고 가꾸어 이들이 외출할 때면 길거리에 향기가 진동하였다,
월왕은 오왕에게 그 미녀들을 바쳤다,오왕이 보니 너무나 아름다우므로 심신이 황홀해졌다,이때 오자서가 월왕의 본심을 통찰하고 또 다시 오왕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밖에도 월왕은 오왕이 진나라를 칠 때 군대를 보내어 돕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오왕의 신임을 얻었다,
마침내 오왕은 여색에 빠져 나라 일을 등한시 하게 되었는데 선왕 합려를 도와 패업을 이룬 공신 오자서가 자주 오왕에게 간하였다,
“우러나라는 지금 군대를 조련하며 오나라를 칠 준비를 하고 있사오니 이를테면 오나라에게 월나라는 뱃속의 병이고 제나라는 피부병이 옵니다,”
그러나 오왕은 백비의 말을 듣고 오자서에게 칼을 내려 자살케 하였다,칼을 받은 오자서는 뜰에 내려 탄식하였다,
“오왕이여! 선왕은 그대를 태자로 세우려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힘써 그대를 권하여 그대가 왕이 되었다,나는 선왕을 도와 초나라를 파하고 월나라를 쳐서 위엄이 천하에 더하게 한 공이 있다, 그런데도 그대가 나에게 죽음을 내리지만 내일날에 월나라가 오나라를 쳐들어올것이다,
오자서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 무덤가에 자 나무를 심었다가 나무가 자라면 그것으로 오왕의 관을 만들게 하시오,그리고 내 몸에서 눈을 뽑아 동문에 매다시오,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오자서는 칼을 뽑아 자살하였다, 오왕은 오자서가 죽으면서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자서야,이미 죽은 몸으로 네가 무었을 보고 알겠느냐? 하고 비웃었다, 죽은 오자서는 말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겨 물에 띄워졌다,
당시 오나라의 국력은 제후국 중 최강이었다,
오왕 부차는 그힘을 내세워 기나라의 황지에서 제후를 모아 회맹하여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오나라의 최융성의 시점이자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월왕 구천은 오왕이 나라를 비운 때를 노려 공격을 개시하였고 오나라는 대패 하였다,
그로부터 4년 뒤 구천은 다시 오나라를 침공 하였다,다시 2년 뒤에 월나라는 다시 오나라를 침공하여 오왕 부차를 고소성에 몰아넣고 포위하였다,이제 사세는 역전되어 구천에게 사로잡힌 오왕 부차가 목숨을 빌게 되었다,
“속국으로 허락해 주시면 대대로 월나라를 섬기고자 하옵니다,
월왕은 옛 정을 생각하여 오왕을 살려주고자 하였으나 범려와 문종이 반대 하였다,결국 월왕은 오왕을 자살케 함으로서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풀었다,
부차가 죽은 뒤에 구천이 오나라에 들어가자 오나라 백관이 하례하였다
백비는 전일 자기가 월왕을 도와준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공을 믿고 안심하고 있었으나 구천은 그를 처단하였다,
얼마뒤에 구천은 오나라를 무찌른 기세를 몰아 제,진,송,노,등의 제후를 집합하여 주에게 조공케 함으로써 천하의 맹주가 되었다,
한편 구천을 도와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은 각각 다른 길을 갔다,
구천의 성취가 극에 이르렀을 때 범려는 문종에게 편지 한 통을 남겨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가 삶기고 적국이 무너지면 꾀를 낸 신하가 망하는 법이오, 나는 주공과 어려움을 같이 할 수는 있으나 즐거움을 같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오,내가 지금 떠나지 않으면 화를 입을 것이오,
범려가 떠나자 구천은 그의 공적을 기려 그의 처자에게 후한 상을 내리는 한편 범려의 모습을 만들어 책상위에 두고 자주 바라 보았다,
그런데 법려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어서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에 가서 이름을 바꿔 행세하여 상경의 벼슬에 올랐다,그러나 오래지않아 그는 또 다시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였으며 그 뒤에는 치이 자피 라고 이름을 바꾸고 축산업을 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어느 때 진성자(陳(덧말:진)成(덧말:성)子(덧말:자))가 치이자피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도(道(덧말:도))에 가깝겠소?”
지이자피가 대답하였다. “임금이 죽어도 나는 죽지 않고, 임금이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는 것 이겠지요” “그대야말로 그렇게 처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치이자피가 대답하였다.
“죽음이 오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고, 망함이 오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난다면 어찌 사(死(덧말:사))와 망(亡(덧말:망))이 있겠소이까?” 그러나 문종은 범려(치이자피)와 달랐다. 그는 구천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그의 재능을 두려워한 구천에게 죽임을 당했다.

끈질김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끈질김의 과정에서 마음이 왜곡되는 것은 좋지 않다. 성공자는 기나긴 와신상담 끝에 공을 이룬다. 그러나 공을 이룬 다음 대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게 되는데, 그것은 와신상담이 그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어렵다. 끈질기면 좋으나 지나쳐 마음이 왜곡되면 나쁘다. 그러면서도 끈질긴 인내력은 꼭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월의 구천이 아니라 범려이다. 범려는 끈질길 때는 끈질길 줄 알고, 때가 찬다음에는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문종을 보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2인자는 주군에게 이용당한 다음 버려질 수 있다. 범려와 문종은 모두 2인자였다. 범려는 일을 이룬 다음 떠남으로써 구천으로부터 그리움과 흠모를 얻었지만 문종은 남아 있다가 버려져 죽음을 당하였다.

일을 이룰 때의 기준과 일을 이룬 다음의 기준은 다르다. 시기가 달라지면 기준도 달라진다. 창업기의 중요 인물이 수성기에도 중요인물이 되라는 법은 없다. 처칠은 영국의 전승국이 되게 하였지만 국민은 그 다음 선거에서 그를 밀어내었다.

때를 알아야 한다. 자기가 선 자리를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범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던 범려는 정치에서 물러나자 경제 분야에서 대성하였다. 그런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성공하게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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