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자질과 문명이 뛰어나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한 근보 성삼문선생[1418-1456]은 계유정난으로 어린 조카 단종을 내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끈질긴 회유에도 불사이군의 충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단종의 복위를 꾀했으나 세조의 수하 한명회 등에게 발각 돼 모진고문을 당하고 끝내 형장에 끌려온 성삼문 선생이 남긴 절명시 한 구절이 뜻있는 후인들의 심금을 후벼 판다.
명을 재촉하는 북소리 저승길을 재촉하고 [ 격고최인명 /擊鼓催人命]
저문 저녁해는 서산을 향하누나 [회두일욕사 /回頭日欲斜]
황천가는길엔 주막도 없다는데 [황천무일점 /黃泉無一店]
오늘밤은 어디서 쉬어 가야 하는가? [금야숙수가 /今夜宿誰家]
근보 성삼문 선생은 처형 당시 육시처참형을 당하고 신체의 한 쪽 지체가 전국 에 조리돌림 을 당하던 중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에 모셔져 후인들이 묘소와 성인각이라는 제각을 세우고 매년 논산시와 문중 의 후인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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