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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최후의 보루 황산성 [黃山城] 충의의 혼[魂]불 , 속살을 드러내다,, - 야산의 들풀속 돌무더기 아닌 뚜렷한 성곽 , 동[東],남[南] 서[西]문 주…
  • 기사등록 2022-10-17 22:33:30
  • 수정 2022-10-19 16: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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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문화원구원 이상복 부원장과 도기정 황산성 복원회장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해발 386 미터의 황산성 [黃山城]은 백제말기 황산벌 전투가 벌어지기전 백제의 오천결사대를 이끌던 계백장군의 장군진이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천년을 두고 전해져 왔다.


군병들이 목마름을 달래던 우물터가 그 증표라는 이야기도 함께다.


황선성으로 오르는 길섶에 위치한 마을 뜰녂이 계백대장군이 짓쳐들어오는 열여섯 나이 화랑 관창을 끝내 목베어 되돌려보낸 데서 관창골 ,관동골 ,관골을 거쳐 관동리[官洞里] 라고 했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포함한 제법 그럴싸 하지만 단편적인 토막말 야사[野史]의 편린들이 좀처럼 꿰맞춰지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른다.


그 지독하도록 무지 몽매했던 어젯사람들의 무심함을 못견뎌한 연산사람들이 천년을 휠씬 넘어 사람들의 입가에서 귓가로 돌고 또 맴돌던 황산성의 옛이야기를 양지로 이끌어 냈다.


황산성 복원회를 결성하고 농투성이 농군들의 땀어린 정성까지 쌈지에 담고 담아 자체적인 황산성 복원 기금을 마련 하는 등 수십년 몸부림에 마침내 충남도가 눈길을 주었고 논산시가 움직여 도시비 2억원을 들여 2차에 걸친 발굴 조사 끝에 유의미한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냈고 도가 추경에산을 세워 3차발굴 조사에 들어갔다.


이 사업을 최초부터 도맡아온 동방문화연구원 팀은 끝내 천년을 돌무더기 속에 깃들여 숨죽이던 백제의 젊은 영웅들의 기걸찬 혼불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그저 산자락 무성한 잡초더미 속에 그득히 쌓여 있던 돌무더기들이 모두가 백제 ! 내나라 내백성을 지키고자 우리 선인들이 땀흘려 쌓은 성곽들의 잔해 임이 드러나고 둘레길 820미터 성루를 연결하는 동문 ,남문,서문의 주춧돌이며 축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을 지켜보던 황산성 복원회 사람들 너나 할것없이 숙연했고 눈가에 눈물이 바쳤고 감개 무량해 했다.


현장 발굴조사 책임자로 현장을 진두지휘해온 이상복 동방문화연구원 부원장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친절한 발굴 현장 설명에 나선 강모원 연구원도 동,서,남문지로 추정되는 현장을 설명하면서 황산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고려 또는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부분적으로 보수 작업을 했던 흔적들이 발굴 현장에서 나온 각 시대 마다의 생활 토기 자기 등을 통해서 추측 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산성 복원회를 이끌어온 도기정 논산시주민자치회장은 3차에 이르는 발굴사업 성과를 백성현 논산시장에게 보고하고 향후 황산성의 복원 방향에 대해서도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논산시주민자치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도기정 황산성 복원회장은 지역사회 개발 부문 2022년도 논산 시민대상을 수상 한바 있다.















▲ 해발 386미터의 황산성 역[域]내에 있는 우물터 연중 맑은물이 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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