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현 논산시장 당선자의 부인 심재경 씨가 22일 있은 양촌면 이장단 월례회에 들렀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회의에 참석한 양촌면 각 마을 이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심재경 씨는 김학운 이장단장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은 후 " 선거때 보내준 양촌면민들의 따뜻한 성원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그 은의에 보답하기위해 초심을 잃지않고 백성현 당선자가 우리사회의 그늘진 곳 소외받는 어르신들 그늘진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의 진실한 "곁'이 될 수 있도록 내조하겠다고 말했다.
짦은 인삿말이지만 회의장에 참석한 이들은 따뜻하고 큰 박수로 화답했다.
회의장 뒷전에서 심재경 씨의 인삿말을 듣고 난 나이든 이장 한분이 넋두리처럼 말했다." 와신[臥薪]의 긴밤을 지나고 상담[嘗膽]의 긴날을 지냈으니 잘할거여...."
시민들의 새 시장에 대한 기대가 더없이 크다.
와신 [臥薪]상담[嘗膽]의 뜻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가깝게 위치하면서 원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 왕 합려와 월나라 왕 구천이 ‘추리’라는 곳에서 크게 싸움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크게 다친 오왕 합려는 죽으면서 아들인 부차를 불러 말했다.
“월왕 구천에게 아비의 원수를 갚아다오!”
새로 오나라 왕이 된 부차는 복수를 맹세했다. 그는 그 맹세를 잊지 않으려 부드러운 자리를 버리고 딱딱한 장작더미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궁을 출입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도록 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잊었느냐?”
부차는 복수의 칼을 갈며 밤낮없이 군사를 훈련시켰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 챈 월왕 구천은 먼저 싸움을 걸어왔다. 하지만 복수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게 도리어 지고 말았다. 부차는 승세를 몰아 월나라 수도인 회계까지 쳐들어갔다. 구천과 월나라 군사들은 회계산 꼭대기에 포위된 채,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살아남으려면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던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이제부터 왕의 자리를 버리고 오나라 신하가 되겠소.”
부차는 항복을 받아들이고 구천을 오나라로 불러 자기 노예로 삼았다. 구천은 나라 정치를 신하들에게 맡기고 오나라로 갔다. 그리고 3년 동안 부차의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했다. 심지어 부차가 병이 들자 그의 대변까지 맛보면서 몸소 간호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치욕을 견딘 것은 훗날을 꾀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왕 부차는 그가 보인 정성에 마음이 누그러져 구천을 놓아주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치욕을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그는 자기 마음이 나태해질까 염려해 머리맡에 쓸개를 달아 놓았다. 그러고는 앉으나 서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마다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말했다.
“너는 지난날에 당한 치욕을 잊었느냐?”
그러기를 10여 년. 마침내 오나라가 빈틈을 보이자 월나라는 가차 없이 공격해 들어갔다. 이번에는 거꾸로 구천이 오나라 수도 고소성을 포위해 부차에게 항복을 받았다. 지난날의 치욕을 씻자, 구천은 부차를 귀양 보내어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부차는 그 호의를 뿌리치고 스스로 목을 베어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비롯했다. 원수를 갚고자 부차가 장작더미 위에 눕고 구천이 쓸개를 맛본 것처럼 “어떤 목표나 큰 뜻을 이루고자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 낸다”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