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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관[階官]의 혼[魂]이서린 관동리를 찾아서..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06-03 01: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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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논산이 내고향 탐방의 두번째순서로 정하고 찾아든 6월2일 오후 의 관동리는 여늬농촌마을과 다름없이 평화로운 들녂의 모습이었다 모내기를 모두마친 들녂에는 뙤약볕에서 고추밭을 매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고 논에서 부자가 나란히 벼모를 땜질하는 풍정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만 비쳐진다

관동리 1구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한 보물제 724호, 성주도씨 종중문서[ 조선태조2,3,4,6년에 성주도씨 7대손인 도응[都應]에게 내린 사령왕지1매와 녹패1매] 각[閣]을 돌아보고 나오는길에 만난 마을주민 도중엽[47]씨에게 관동리 부락의 연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논두렁을 정리하던 도중엽씨는
한때는 1,2구 합하여 100여세대에 400여명의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관동리는 현재 1구 50여세대 와 2구의 30세대를 합친 80여세대 200여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딸기 수박등 특용작물재배 를 주업으로 하고있고 더러의 아낙들은 황산성을 주봉으로 울울창창하게 연결된 산숲에서 산채[山菜]를 채취해 가계[家計]에 보태기도 한다는 설명을 곁들여 왜 부락 이름이 관동리[官洞里]인가 라는 필자의 물음에 어린시절 어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라며 계백장군과 화랑관창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서기660년 여름 백제국의 16관등중 두번째품계인 달솔의 지위에 있던 대장군 계백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향해 침공해온 김유신의 5만 군대를 막기위해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지금의 연산리 신암리 신양리,관동리 천호리 송정리 일원]에 진군하여 설치한 3영중 대장군 본영을 황산성에 정하고 5천의 군대로 5만의 신라군을 맞아 네번을 이기는 싸움중에 생포한 화랑관창을 결국 목베인곳이 관동리 1구의 관창골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지명이 관골-관저골 로 이어져 오늘의 관동리로 정해졌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관창골에서 임도를 따라 1,5km쯤 오르면 옛백제군영의 흔적이 남아있노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나라를 지키기위해 전선에 나선 계백장군의 충의와 임전무퇴로 무장한 화랑 관창의 애국혼이 어우러진 계관[階官]의 꿈이 서린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관창골에 들러 잠시 피곤한몸을 추스린뒤 걸음을 재촉하는중에 눈에들어오는 이정표에는 황산성터까지 의 거리가 1.5km로 표시되어 있었다,

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터덕이며 걷다보니 연산면 소재지부터의 강행군이 무리했는지 발걸음은 무디어지고 되돌아설까를 두고 망서렸지만 인적없는 호젓한산길 신록이 빚어내는 청쾌한 숲내음과 갖가지 야생화며 수림들이 몸부딛쳐 들려주는 숲소리에 이끌려 길을 재촉하는데 황산성터로 접어드는 길목에 약사암이라는 아담한 암자가 눈에 띈다
 
물한모금 얻어 먹을 요량으로 암자로 들어서니 나이 예순은 됐슴직한 스님한분이 불청객을 웃어반긴다,
한사코 자신의 법명을 드러내 밝히기를 꺼려하고 사진촬영에도 손사래를 치는 스님에게 황산성터에 얽힌 유래를 귀동냥하고자 했으나 스님은 자신은 구름따라 바람따라 떠도는 산승으로 아는게 없다고 쉽게 말문을 열지 않으신다,

필자또한 비윗살은 좋은편이라서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이렇게 뵈옵는것또한 인연이거늘 어리석은 중생에게 한말씀만주시지요 .도[道]는 무었입니까? 라고 여쭙자 스님은 표정없는 모습으로 나직이 혼잣말을 하듯 한말씀을 토해낸다
"도라는것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않고 통하지도 않으니,무어라 말하겠는가...인생이란게 어떻게 가는지 어디로가는지 모르고 그저 흐르는 계곡물처럼 흐르고 또 흐를 뿐인것을...'
인생이란게 캄캄한 절벽속을 헤매다 그저 사라지는것을...
독백처럼 토해내는 이름모를 스님의 두어말씀이 난해하기는 하나 삶이 부질없고 덧없으니 집착하지말고 흐르는 물처럼 살라는 가르침으로 가슴에 스며듬을 느낀다,

필자는 다시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아귀다툼하듯 현실생활을 살수밖에없는 중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한말씀 던져주시면좋겠네요 하자 스님은 다시말한다
"주어진 환경속에서 열심히 사는게 희망이다"고 말씀하신다,
 
너무도 당연한것같고 어디서든 들을수있는 평범한이야기 같기도한데 30여분동안 스님께 전해들은 두어마디는 필자의 뇌리한켠에 각인되고 있음을 느꼈다

스님의 생활을 살펴주는듯한 보살님으로부터 맛진 산수한모금 얻어마시고 다시걸음을 재촉한하는데 꼬리노란 이름모를 산새 한쌍이 푸드득 숲을 날아 하늘높이 비상하고 서너걸음앞엔 날다람쥐 서너녀석이 잔뜩웅크려 불청객을 빤히 바라보곤 쏜살같이 내뺀다,
 
이윽고 걷고 걸어서 오른 황산성터,,,아직도 백제 군병의 두런거림이 배어날듯한 성터를 휘돌아 울창한 숲속에 지친몸을 뉘어버렸다

얼마쯤 몸을 쉰뒤 다시 휘적거리며 오던길을 걸어 내리는데 내리쬐는 햇살을 가려주는 숲그림자 얼마나 좋던지 도연명의 음주편에 나오는 싯귀의 마지막 구절이 절로 웅얼거려진다
"이삶을 얻었슴이 참으로 즐거워라,,,,;
다시또 이길을 올수만 있다면 ,,다시또 이길을 올수만있다면 그때는 미쁜 동무하나 함께였음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해본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걸어서 다다른 관동리 2구,,,옛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나는 1구와는 부락분위기가 사뭇다르다,

잘지어진 마을회관 모습이그렇고 자신의 조상님들 유택을 조성하는데 협조해준데 감사의 표시로 마을회관건립에 기여했대서 세워진 모신약회사 사장의 공덕비도 그렇고 ,, 외지사람들이 별장처럼 지어사는 모습의 현대식 가옥 들이몆채 늘어선게 그렇다,

2구에 들어서 한참을 걸어오르니 조선태조7년에 창건했다는 연산향교가 눈에 들어온다
필자에게는 먼어제의 방조부이신 사계김장생 그아드님 신독재 김집 그어른들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던 교육기관이기도 했던 연산향교는 공자님과 5성[聖] 22현[賢]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과 명륜당 재실 동서재가 비교적 잘보존된 모습으로 백면의 후학을 반겨맞는듯했다
 
향교 본채한켠으로 고색창연한 문묘정은 아마도 엤어른들이 한가로운 시간 담론을 즐기던 공간으로 기능했음직한데 오랜세월 풍설에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잡초는 무성하고 마루는 지저분한게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족히 대여섯시간을 주마간산격 으로나마 관동리 일대를 더듬어보면서 필자의 가슴에는 다시또 황산벌에 오천결사대 충혼비 하나 기념표석하나 세우지못하는 못난 시민의 한사람임이 부끄럽다는 자괴감이 일렁인다,

관창의 외로운 혼이 깃든 관창골,,황산성터,,,황산벌 주전장,,어디에든 조그만 사당하나 못세울 이유없건만 계백과 오천결사대의 충의의 넉들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장렬히 산화한 화랑 반굴과 관창 그리고 함께죽어간 신라군에 얽힌 사연들을 마을 한둘 노인들의 이야기거리로 맡겨둘밖에 없는 우리들의 무심함이 밉기만하다

계백과 관창,,,,계관[階官]의 꿈이 어우러진 관동리를 스치며 다시또 꿈을 꾼다,,,
언젠가는 우리 시장골[屍葬骨]에 묻힌 외로운 넋들을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고 충혼비도 세우고,,,그런 우리가 되고야 말겠다는 소박한 꿈을 꾼다,

말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의 교실이라해도 과언이 아닐,,,관동리[官洞里]일원,,논산시의 또다른 보고[寶庫]일지니,시민들의 산책로로,,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학생들의 야외교육도장으로서 손색이 없을것같다
 
 
 
 
 
 
 
 
 
 
 
 
 
 
 
 
 
 
 
 
관동리의 지명에 대한 유래

백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의 5만 군대가 황
산벌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신라의 화랑 관창(官昌)이 단독으로
쳐들어와 생포한 계백은 어림과 용기를 가상히 여겨 살려보내니
또다시 쳐들어와 칼로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어 돌려보냈는데 그
곳이 이곳이라 하여 관창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광청골 또는
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 식한면(食汗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교촌(校村) 일부를 병합하여 관동
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관동 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15세대에 405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자연부락은 관창
골, 향교골, 상관, 중뜸, 하관 등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무재봉골[골] : 관동리 서북쪽 함지봉과 북쪽의 선밭날 사이
의 골짜기로 백석리로 넘어가는 골짜기이다.
관동(官洞)[마을] : 관창골 또는 관동리라고도 하는데 아래관
동, 중뜸, 위관등이 있다.
관동교(官洞橋)[다리] : 관동리 남쪽에 있는 다리로 연산리 사이
에 있다.
관적골[골] : 관동리 서북쪽 함지봉 아래의 평편한 곳을 말한다.
관창골[마을] : 백제와 신라와 황산벌에서 격전을 벌릴 때 신라
의 관창을 생포하여 살려 보낸곳이 이곳이라 하여 관창골 또는
관동, 관동리라 한다.
관청골[마을] : 관동리 또는 관창골 이라고도 한다.
교촌(校村)[마을] : 연산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하여 교촌 또는
향교골이라고도 한다.
꽃밭재[산] : 관동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산이다.
농바위[바위] : 관동리 북쪽에 있는 바위인데 형태가 마치 장롱
처럼 생겼다 하여 농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대부뚝[보] : 연산천 옆을 가로막고 있는 뚝이다.
마당바위[바위] : 열녀비 모퉁이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마치 마
당처럼 평편하고 넓다고 한다.
밑밭골[산] : 관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북쪽 뒤편에 선밭날이 있
다.
범골[골] : 관동 북쪽 밑밭골과 꽃밭재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이 고개를 넘으면 송정리 범골 마을이 나온다.
벼락바위[바위] : 향교골에 있는 큰 바위이다.
보무라들[들] : 창래들 동쪽에 있는 들판이다.
비단논들[들] : 관동 남쪽에 있는 들판인데 옛날 논을 살 때 비
단을 주고 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창터[터] : 관동에 있는 사창(社倉)이 있었던 터이다.
산제골[마을] : 교촌 또는 향교골이라고도 하는데 연산향교에서
제사를 지낸다하여 산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상관(上官)[마을] : 관동 위쪽에 있는 마을로 위관동 이라고도
한다.
선밭날[산] : 관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206m이다.
성재[산] : 관동리와 표정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날 성이 있었
다 하여 성터라고도 한다.
성터[산] : 관동 서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267m 이며 옛날 성이
있었다 하여 성재라고도 한다.
승적골[골] : 관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성재 아래에 있다.
아래관동[마을] : 하관이라고도 하는데 관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
이다.
아래뜸[마을] : 중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어필각[사당] : 뒷말림에 있는 성주 도씨의 사당이다.
여단터(厲壇)[터] : 관동 남동쪽에 있던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제사 지내던 여제(厲祭)의 단(壇)이 있던 터이다.
여제단터(厲祭壇)[터] : 여단처라고도 하며 여제의 단이 있던 터
이다.
연산천(連山川)[내] : 관동리 남쪽에 흐르는 내로 관동리와 연산
리 사이를 흐르고 있다.
연산향교(連山鄕校)[고적] : 향교골에 있으며 조선태조7년(1398
년)에 창건하였고, 5성(聖) 22현(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춘
추로 제향하고 있다.
열녀비모퉁이[거리] : 관동리 동쪽 보무라기들로 가는 길거리
로 옛날 여기에 열녀비가 있었다고 한다.
위관동[마을] : 상관이라고도 하며 관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위뜸[마을] : 중뜸 위에 있는 마을로 선밭날 남쪽에 있다.
장성백이[거리] : 장승백이라고도 하는데 하관 남쪽 아랫편에 돌
장승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장성백이들[들] : 하관 아래쪽에 있는 들이다.
장승백이[거리] : 장성백이라고도 하는데 하관 남쪽 아랫편에 돌
장승이 서 있는데 지금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장승제를 올리고
있다.
장승백이들[들] : 장승이 서 있는 하관 아래쪽에 있는 들로 장성
백이들 이라고도 한다.
중뜸[마을] : 위뜸과 아랫뜸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창래들[들] : 장승백이들 아래쪽에 있는 들로 연산천이 흐르고
있다.
하관(下官)[마을] : 관동 남쪽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아래 관동
이라고도 한다.
함지봉(咸芝峯)[산] : 관동리 서북쪽에 있는 산인데 높이 387m이
다.
향교골[마을] : 연산 향교가 있는 마을로 교촌 이라고도 한다,
황산성(黃山城)[성] : 관동 서쪽 성재를 중심으로 쌓은 성으로
석성(石城)으로 백제때 쌓은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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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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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man2007-06-10 01:11:29

    벌곡만목리에 이번엔 관동리 다음은 어디유?발헹인님이 손수 논산을 아예 속속들이 누비시겠다? 지켜볼만한일이로구먼유,,,,,,,,,발행인님두 원한번 풀어봐야지유,,,,

  • 프로필이미지
    2007-06-04 12:27:08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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