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은 예학[禮學]의 고향이다
천지지간 [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인간이 최귀[最貴] 하다 함은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권선징악[勸善徵惡]의 가치기준[價値基準]이 확립[確立]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 [ 東方禮儀之國]으로 일컫는 것은 조상을 숭배하고 인륜도덕을 중시하여 문화민족으로 모범된 생활을 지속해온 국민이기 때문이며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륜의 기본인 삼강오륜[三剛五倫]을 실천해온 조상들의 음덕[蔭德] 일 것이다
우리논산은 노성향교 연산향교 은진향교와 돈암서원 죽림서원 노강서원 등 10개의 서원과 궐리사를 비롯한 4개의 사우[祠宇]가 있어 어느 고장보다 선비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임에 틀림없다.
조선의 학맥[學脈]을 크게 나누어 퇴계 [退溪] 이황[李滉]을 중심으로한 영남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우암 [尤庵] 송시열[宋時㤠] 등을 중심으로 경기 충청을 아우르는 기호학파[畿湖學派]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우리 논산은 예학의 종장[宗匠]이신 사계 [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다,
연산면 고정리에 사계[沙溪] 묘역[墓域 ]이 있고 후학을 양성한 돈암서원[遯巖書院]이 있어 그러하다
1871년 조선말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의 하나가 바로 돈암서원[遯巖書院]이다
본 서원은 문원공 [文元公] 김장생[金長生]을 주향[主享] 하고 신독재 김집 , 동춘당 송준길 , 우암 송시열을 배향[配享] 했다,
1869년 조선 효종임금 10년 1차 사액[賜額]을 그 이듬해인 1550년 현종임금 1년에 돈암[遯巖] 이라는 사액[賜額]]을받은 유서깊은 서원이기도 하다,
사계 김장생 선생은 임진왜란과 정묘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사회절서가 안정되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가가견문[家家見聞]의 예서[禮書]를 정리하여 현실에 맞게 예론을 정립하고 가례의 시용[施用]에서 오는 시비의 기준을 윤리적 실천 지침서인 가례집람 [家禮輯覽]을 편찬 하여 예의 기본인 관혼상제[冠婚喪祭] 의식을 백성들이 알기쉽고 아해하기 좋게 그림을 그려 설명하였다,
고려조의 안향 - 정몽주 - 조선조의 김종직 –김굉필 – 조광조 - 이황- 이이- 김장생 -송시열 로 이어진 성리학[性理學]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질서 사물의 근본이치와 우주의 원리 등을 탐구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뒤에 세상에서 뜻을 펼침이 바람직하다하여 인,의,예,지,신 [仁,義,禮,智,信]의 덕목을 실천함으로서 사회속의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며 예[禮를] 강조한 학문이다,
우리 논산은 사계 [沙溪] 우암 [尤庵] 등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하는 유림사회가 그 뜻을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돈암서원 [遯巖書院]의 사우[祠宇]가 숭례사[崇禮祠] 임은 예[禮]를 존중함이요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의 사우명이 덕[德]을 숭상한다는 뜻의 숭덕사 [崇德祠] 이니 이는 영남과 기호학맥의 차이 로 불수 있다,
돈암서원은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中丁] 일에 논산지역의 유림과 광산[光山] 은진[恩津] 문중의 후손들이 모여 제향[祭享]을 모신다,
논산시유림협의회장 국봉중 [鞠奉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