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다 가지려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김홍신(소설가,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 가보면 한국인들의 DNA에는 사회규범 준수의 정신이 배어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유모차가 다가오면 상전이 지나가듯 길을 터주고, 길목을 지키는 경찰에게 음료수를 권하며 수고한다는 말을 전하고, 미처 촛불을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 촛불을 나누어주고, 날이 궂을 때는 낯선 이와 우비를 나누어 쓰고, 전투경찰 앞에서 중년부인들은 자기아들이 아닌데도 ‘우리 아들 건들지 말라.’고 외치고, 간이 화장실 앞에서 휴지를 나누어 주는 손길이 있고, 다리 아픈 노인에게 앉을 방석을 내어주고, 시위가 끝난 광장에는 쓰레기 한 점이 없게 만드는 청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인 것이다.
이런 행동은 내 존재가 소중하고 우리의 가치가 존엄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나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인정신이다.
동학혁명과 일제강점기의 의병과 독립투사들이 어찌 자신의 영달을 위해 영육을 바쳤겠는가. 해가 떠도 어둡던 이 나라의 고단한 백성들이 4.19혁명과 광주민주화 운동과 6.10항쟁을 비롯하여 2016년에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촛불로 정기를 세우지 않았는가.
절대빈곤과 외세의 탄압, 적은 인구와 부족한 지하자원, 동족상잔으로 아직까지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임에도 민중은 끊임없이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구어낸 저력의 대한민국 인 것이다. 그래서 쥔 자와 가진 자는 이 땅의 주인인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고 섬겨야 한다.
조선 전기에는 백성들에게 억울한 사정이 생기면 북을 쳐 임금에게 하소연하는 신문고제도가 있었지만 하층민과 지방백성은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임금이 행차할 때 원통한 사연을 가진 백성들이 징, 꽹과리, 북을 쳐 임금에게 직접 억울함을 고하는 격쟁(擊錚)이 시행되었다.
조선조에 고위관료에 대한 풍문탄핵(風聞彈劾)이란 제도가 있었다. 소문만으로도 높은 직위에 있는 벼슬아치를 삭탈관직 시켰던 것이다. 풍문공사(風聞公事)라고도 했는데, 벼슬이 높아지면 소문조차 두려워하는 게 도리라는 걸 알게 했던 것이다. 그만큼 백성을 두려워하고 매사 조심하며 측근을 멀리하고 수신제가 하라는 뜻이었다.
벼슬아치들에게 소문 때문에라도 백성을 잘 거두게 한 뜻은 바로 누린 만큼 의무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바로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만큼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경주 최 부자 가문(9대 진사, 12대 만석꾼)의 육훈(六訓)은 지금 읽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둘째, 만석 이상의 재물은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강대국들의 틈새에 시달리고 나라가 어지럽고 한파에 조류독감에 이르기까지 사는 게 고단하지만 이럴수록 주변을 두루 살피고 서로 챙겨야 한다. 함께 위기를 극복하면 그 혜택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 역사를 눈여겨보면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 살펴준 뒤에는 반드시 발전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촛불의 기세와 염원이 사람이 살만한 나라를 만들고 부디 남북의 평화통일과 따뜻한 통일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우리 민족의 웅혼한 정신사를 믿기에.
[ 김홍신 선생께서 월간 굿모닝논산 창간호에 보내주신 글 입니다 ,다시한번 김홍신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