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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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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4-07-17 11: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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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뒤 이른바 시국사범들은 차례로 석방되었고, 12월8일 0시를 기해 ‘긴급조치 9호’도 해제했다. 사진은 필자(성유보·왼쪽)가 12월7일 저녁 함께 풀려난 김용훈(가운데)·송좌빈(오른쪽)씨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치소를 나서는 모습으로, 12월8일치 <한국일보> 사회면과 <경향신문> 1면에 실렸다.

19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사라지자, 정치범 처리 문제가 초미의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사법부는 구속자 석방을 두고 갈팡질팡했다.

동아투위 위원 구속자 10명은 그해 말께 모두 석방되었지만, 출소 시기는 뒤죽박죽이었다. 가장 늦게 구속되어 ‘10·26’ 당시 2심 재판이 진행중이던 윤활식 위원장 대리와 이기중 총무가 뜻밖에도 11월8일 먼저 풀려났다. 구속 만기가 된 고 홍종민 위원과 장윤환 위원장 대리는 각각 11월4일과 11월19일 출소했지만,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난 나머지 6명을 보면, 박종만 위원 11월21일, 정연주 위원 12월2일, 고 안종필 위원장 12월4일, 고 안성열 위원 12월10일, 김종철 위원이 가장 마지막으로 12월24일 나왔다.

나는 12월7일 저녁 갑작스레 풀려났다. 송좌빈·김용훈·김상복과 함께 영등포구치소 문밖을 나서니 아는 얼굴이 전혀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미처 석방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온 뒤에야 최규하 대통령이 당선 뒤 첫 국무회의에서 국회 건의안을 받아들여 ‘긴급조치 9호’를 8일 0시를 기해 해제한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들 대신 우리를 멈춰 세운 남자가 있었다. <한국일보> 기자라고 소개한 그는 4명을 함께 불러 모아 일단 출소 장면부터 찍었다. 그는 바로 박래부(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새언론포럼 회장) 기자였다. 박 기자는 그길로 우리집까지 동행해 가족과 재회하는 사진까지 곁들여 이튿날 사회면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닫힌 문 열리며 자유의 포옹-긴급조치 관련 구속자 석방되던 날’이란 제목이었다.

“시간으로는 7일 하오 7시45분. 서울 영등포구치소 앞은 분명히 한밤중이었으나, 수감자들이 하나씩 둘씩 풀려나오면서부터는 이미 새벽이었다. 맨 먼저 회색 바지와 흰 저고리의 김상복(25·중앙신학대 3년)군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왔다.

소아마비로 약간 불편한 모습인 김군을 멀리서 가장 먼저 발견한 김군의 누이동생이 ‘오빠야’ 하고 큰 소리를 냈다. 다음 순서는 흰 저고리·검은 바지 차림의 성유보(37·전 동아일보 기자)씨. 그 다음 순서는 송좌빈(56·충남 대덕군 동면)씨 그리고 그 다음은 김용훈(30·충남 논산시 논산읍)씨. 세 사람은 모두 갑작스런 석방 소식이 가족에게 전해지지 않아 마중 나온 가족이 없었다.

삼인은 잠시 허탈한 듯 하다가 근처 대폿집으로 가서 막걸리 2되를 게눈 감추듯이 들이켰다. 안주는 돼지볶음.” “성씨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10평 아파트 집에 밤 9시55분쯤 도착했다. 그 시간 부인은 남편이 다음날 새벽에나 나올 줄 알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두 아들 덕무(7살)와 영무(3살)군과 극적인 만남은 그렇게 감격스럽게 이뤄졌다.

” “한밤중 갑자기 안겨든 자유. 한밤중 갑자기 겪는 만남. 전국 곳곳의 교도소와 구치소 문 앞은 다시 결합하는 혈육들의 기쁨으로 밤새 출렁댔다. 속옷 입은 아들을 부둥켜안은 어버이는 수염이 따가운 아들의 볼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쏟았고, ‘외국에 출장 가셨다’던 아빠를 마중한 일곱 살 아들은 ‘아빠, 선물은 어딨어?’ 소리쳐 어른들을 울렸다. 긴급조치 9회가 해제되던 한밤중은 겨울밤답지 않게 짧고 또 짧았다.”

그는 <1975-유신독재에 도전한 언론인들 이야기>(인카운터, 2013)에 당시의 취재기를 회상하는 글까지 기고해 주었다. ‘민권일지 사건’으로 갇혔던 동아투위 10명 가운데 하필 나만 ‘긴조 9호’가 해제되던 날 풀려나 유별난 취재 대상이 된 것도 참으로 공교롭다. 어쨌든 아직까지 박 기자에게 술 한잔 산 적이 없으니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무심하다 하겠다.

나는 석방되자마자 경산으로 내려가 부모님을 뵈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야윌 대로 야위어 계셨다. 게다가 알코올중독이었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1년 전부터 하루 종일 식사 대신 막걸리만 드신다고 하셨다. 나 때문이라는 자책이 들었다.

술은 기쁠 때, 즐거울 때 마셔야 제맛이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판검사쯤 되어 집안을 일으켜 세울 녀석”이라고 잔뜩 기대를 걸었던 둘째 아들이 두차례나 감옥에 갔으니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겠는가? 물론 두 번의 옥살이는 전혀 창피하지 않았지만, 아버님을 뵈었을 때만은 송구스러워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해가 바뀌어 80년 설 때 뵈니 아버님은 더욱 야위어 계셨다. 우리 형제들은 의논 끝에 당시 대구에서 군무원 생활을 하던 막내 동생이 직장을 접고 아버님을 모시면서 정미소를 맡도록 결정했다. 동생에게 아버님 건강진단도 받게 하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암이었다. 우리는 감히 아버님에게 암을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님 자신도 짐작하셨으리라. 결국 80년 4월말 나는 아버님을 서울로 모시고 와 경북고 동기 도종웅(정형외과 과장)이 있는 국립의료원에 입원시켰다. 5월12일 아버님은 수술을 받았다.

나는 아버님 간병을 하느라 석방 이후 6개월간 시국 상황과 단절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도 전두환 정권은 ‘5·17 쿠데타’ 직후 나를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려놓았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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