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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논산YWCA 고인숙 회장.여성운동의 새지평 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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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07-02-25 14: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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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군[노동익 에덴보육원 원장]과 함께 사회사업에 전반생 바친 봉사외길,.소외받는 이웃들,미혼모,소년소녀 가장세대 자활,국제결혼 귀화주부 도우미역 자임,2007년도 젊은 주부 청소년 일자리…
 
 
한국여성운동사의 모태로 불리우는 한국 YWCA논산회장에 고인숙[52]에덴보육원 부원장이 선임됐다,부군 노동익 [57]에덴보육원 원장과 함께 시아버지 노봉욱 충남보육교사 교육원 원장이 설립한 에덴보육원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고인숙 신임 회장은 전임회장을 도와 부회장으로 논산 Y의 인력개발센터운영과 가정폭력상담소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쳐온 경험을 바탕으로 600여 회원과 함께 논산여성운동사에 새지평을 열어나갈것을 다짐했다

회원공동체로 운영되는 논산YWCA는 회원이 650여명에 달하는 기독교 여성단체로 기독교운동을 통해 각종 자원봉사활동에 앞장서왔고 여성들의 직업안정을 위한 기술습득과 폭력상담소활동 을 통해 여성지위향상을 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어온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임 고인숙회장은 초중고생으로 구성된 에덴보육원의 83명 원생들을 친자식처럼 돌보아온 사랑의 마음으로 그늘진 곳의 어려운 이웃들을 양지로 이끌고 싶다고 회장 선임의 변을 밝히기도 했는데 2007년도 논산Y의 사업방향과 관련해 기존 폭력상담소운영,인력개발센터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과 병행해 정부나 지자체의 사회안전망 밖에서 고통받는 이웃들을 찾아 갱생의 삶터로 이끌고 싶다고 야무진 포부를 피력하기도 했다

고인숙 신임회장은 자신이 살림을 도맡고 있는 에덴보육원 원생들에게 "할수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줘왔듯이 논산Y가 생명의 바람으로,세상을 살리는 여성으로 우리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 "할수있다"라는 자신감을 안겨주는 '사랑숲'이 되고싶다며 "할수있다"라는 자신감으로 거친 세파와 부딪쳐나갈때 신은 반드시 시련을 극복할 용기와 지혜를 주신다고 자신의 고난극복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신임 고인숙 회장은 전임회장을 도와온 부회장으로 Y활동에나름대로 성심을 다해 합력해왔지만 드러나지않게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박순례 회원을 비롯한 훌륭한 임원들이 많은데도 회장직을 맡게돼 송구한 심정이라면서 향후 600여 회원들의 화합과 친목도모를
당면한 우선과제로 삼아 "인화'를 위해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논산Y는 신임 고인숙 회장의 취임식을 오는 3월 8일경 거행할 예정인것으로 전해졌다

신임 고인숙회장은 부군 노동익원장과의 사이에 명헌[29] 태헌의 두아들을 두고 시아버지 노봉욱 이사장을 모시고 있다
 
 
 
한국YWCA의 역사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 선생에 의해 창립된 한국Y 초기의 활동들은 주로 계몽, 교육, 생활개선, 여권신장, 민족운동 등에 집중되었다. 당시 여성들을 괴롭히던 조혼, 공창제도 폐지와 축첩제의 반대 등을 통하여 여성들의 권익보호는 물론 애국정신을 기반으로 물산장려운동에도 앞장섰다.

1950, 60년대 Y는 박에스터 선생의 영향으로 지도력 훈련을 강화하면서 민주적이며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지도력을 배출해 내는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소외지역을 위한 활동을 개발하여 봉사활동을 하는가 하면 또 청계천 노동자들을 위한 평화교실을 개설하였고 노동자 문제에도 개입하여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생활조건 향상, 더 나아가 근로여성들의 직업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 주력하였다. 또한 여행원 결혼 각서 폐지운동, 여성조기정년제 폐지운동, 가족개정법운동에 앞장서면서 여성의 인권신장에 앞장섰다. 1980년대 후반부터 외채를 줄이고 소비를 절약하는 경제자립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또한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환경운동을 벌였으며 냉전의 종식과 새로이 개편되는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한 평화프로그램을 전개하였다. 365일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연변 한민족여성대회를 열어 민족통일을 전망하면서 흩어진 여성동포가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했다. 1995년 세계Y 100주년 대회를 한국 서울에서 갖게 되어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름으로써 다시 한번 한국Y의 저력을 드러내었다. 특히 1998년 IMF 파동으로 외환위기 사태가 빚어지자 외화 모으기 캠페인,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운동, 실업충격완화 및 창업준비 프로그램, 여성실업자를 위한 재활용공공근로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우리 경제 살리기 시민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현재 한국Y는 전국에 54개 회원YWCA를 두고 8만5백38명(2001.12월 기준)의 회원과 함께 이 사회의 평화 이루기에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각 시대별 역사

1) 애국계몽의 시대(1922-1945)
2) 전후 재건과 재도약의 시대(1946-1962)
3) 여성인권보호 앞장의 시대(1962-1972)
4) 여성의 능력을 사회정의 실현에 (1973-1979)
5) 평화와 정의의 일꾼으로 (1980-1985)
6) 생명을 귀하게 삶을 새롭게(1986-1995)
7) 세계와 함께 이웃과 함께(1996-2002)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에 의하여 한국YWCA강 창립되었다. 동경 유학 중 세계 여성단체인 YWCA를 접한 김필례 선생과 이화학당의 김활란 선생, 그리고 중국 유학 중 YWCA 활동을 하고 있던 유각경 선생이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 여성들을 모아 한국Y를 탄생시켰다.

당시 조선여성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 아래 봉건사회 관습이라는 이중 억압을 받고 있었다.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기독여성단체의 조직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뜻을 모았다.

창립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한국Y는 계몽, 교육, 생활개선, 여권신장, 민족운동 등에 힘을 쏟았는데 초기에는 계몽사업과 생활개선운동에 주력했다. 공민학교를 운영하며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했으며 요리강습, 흰옷 염색하기, 부엌 및 화장실 개조 등 생활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Y는 여성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당시 여성들을 괴롭히던 조혼/공창제도 폐지운동과 축첩제도 반대운동을 펼쳤으며 민족의 경제를 위협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애국운동 차원에서 물산장려운동에도 앞장섰다.

Y가 펼친 이 같은 계몽, 교육운동은 농촌운동에서 심화되었다. 민족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농촌이 튼튼해져야 한다는 일념아래 농촌을 위한 각종활동을 전개하였다. 수원 샘골에 최용신 여사를 파견하여 전개한 농촌운동은 그 시대 가장 대표적인 농촌운동이 되었다.

이렇듯 활발하게 전개되던 Y활동은 일제 말기에 이르러 탄압이 극심해져서 더 이상 활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천황신민화정책을 내세우며 특히 기독교를 탄압하였는데 결국 조선Y도 1938년 일본Y에 소속되었다가 1942년 끝내 문을 닫았던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해방과 함께 안으로는 연합회 조직을 다지고, 밖으로는 세계Y 정회원으로 승인을 받는 등 굳건한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런 와중에 1947년 박에스더 선생이 한국Y에 파견됨으로써 더 큰 발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다시 혼란을 가져왔다. 피난지인 부산에서 Y는 밀려드는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주력하기로 하고 우유죽을 끓여 배급하고, 무의탁 소녀들에게 농업, 원예, 축산, 가내수공업 기술을, 전쟁미망인들에게 양재, 편물 기술을 전수하여 생존능력을 가지도록 도왔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Y활동도 날로 발전해 나갔다. 각 지역에서 회원Y가 설립, 확장되었고 회관도 마련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박에스더 선생의 영향으로 지도력이 계속 훈련되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지도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김현자, 김봉화 두 분을 미국에 파견하여 훈련시켰다. 대학생과 Y-Teen을 분리시켜 학생운동을 활성화시켰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의 개발로 학생활동을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발전시켰다. 당시 지도력이 크게 요청되던 사회에서 Y는 여성지도력을 배출해 내는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또한 여성으로 하여금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도록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를 불러일으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민법상에 있어서 여권향상을 위한 노력이었다. 1957년 <여성과 친족상속법>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해 널리 배부하였으며 혼인신고 강조운동을 펼쳤으며 1962년 친족상속법 개정과 가사재판소 설치 주장 건의문을 제출하면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 향상을 위한 몸짓을 멈추지 않았다.

4.19와 5.16 등으로 이어진 정치혼란 속에서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축첩자에게 투표하지 말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와 강연을 벌이고 부정 축재자 및 축첩자 축출운동을 전개했다. 그 열기는 국산품애용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치적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민족 발전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었던 이 시기의 산업화 추진은 경제적 발전으로 치닫는 노력에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도시집중화, 이농현상, 노동자의 문제, 특히 저소득 근로여성의 권익문제, 도시빈민화 지역 형성 등 많은 사회문제를 낳았다. 이에 여성노동자 및 소외여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에 이르렀다.

서울Y는 1964년부터 대동모방 공장의 여직공들을 방문하여 소창(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으로 위로하였으며 1966년에는 서울여객?동영직물?대동모방 책임자와 근로여성문제 간담회를 가지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근로여성문제를 보다 깊이 고민하면서 연합회는 1971년 여성근로자들을 초청하여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그들의 경험을 나누고 개선을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또한 버스안내원들에 대한 처우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현황을 조사하기도 했다. 청계천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평화교실을 개설하는 등 여성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생활조건 향상에 관심을 가졌다.

지역사회 속에서 Y는 소비자보호 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정불량상품을 개선하기 위한 고발활동을 시작하고, 여론조사, 시장조사, 좌담회, 불량상품 전시회 등을 열면서 시정촉구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소비자운동을 펼쳐나갔다.


저소득층의 소외지역을 위한 활동을 개발하여 대학생들이 서울 금화?낙산 서민아파트지역에 봉사활동을 펼쳤는가 하면 농번기를 맞는 농촌여성을 위하여 유치원 및 계절탁아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1966년 광주Y는 가정법률상담소를 설치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중산층 여성들에게 취미활동 및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여 여성의식 제고를 꾀했다. 뿐만 아니라 클럽조직을 활성화시키면서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조직화하며 활발히 회원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창립50년을 넘어선 한국Y는 반백년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보다 발전적으로 운동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다. 범여성단체운동 차원에서 가족법개정운동을 전개하고 소비자운동을 주도적으로 움직여갔으며 세계Y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및 의식향상과 여성들의 직업개발에 힘을 쏟아냈다.

1950년대부터 전개해온 가족법 개정운동을 보다 심화시켜 범여성단체 운동으로 확장하면서 지속적인 강연회를 통해 의식 확산을 시켰으며 수 차례의 건의문을 제출했다. 소비자운동 또한 활기를 띠고 전개되었는데 서울의 경우 상설소비자고발센터를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발이 되고자 노력했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인권운동이라는 신념으로 소비자 전국대회를 가졌으며 강력한 압력단체로서의 기능을 다했다. 특히 1974년 인천 공해 유발 공장 설립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설립을 취소시키는 성과를 거둠으로 환경운동의 삭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편 여성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들을 위해 상담활동과 직업훈련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중등교육과정을 설치하였다. 대학Y를 중심으로 노동교실과 빈민지역 여성교실 등을 통해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버스안내원의 인권옹호를 도모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1977년에는 남영나이론 사장 면담 통해 노사협상 중재했으며 1978년에는 동일방직 노사협상과정에 동참, 해고노동자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여성들을 위한 타일, 도배, 페인트 등 새로운 직업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직종과 직업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변화시켰다. 또 1977년 Y 파출부 교육교재 발간하여 파출부 훈련을 전문적으로 실시해 회원 규모를 확장시켰다.

한편 이런 노력들은 그 성과여부를 떠나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낮은 자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광주민중항쟁과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한국Y는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소외된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 직종개발과 직업무료상담활동, 장애인을 위한 복지운동을 전개한 시기였다. 외부적으로는 한국 여성운동의 세계적 수준으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구축했다는 점, 새롭게 등장한 진보적인 여성단체들 속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Y가 도전을 받으면서 새롭게 연대의 틀을 형성해 나아갔다.

특히 농촌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생활이 보다 윤택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역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시설에 주목하여 방앗간, 목욕탕, 구판장 등을 만드는 일을 통해 여성의 직업-타일, 도배, 페인트, 감귤전정(제주)-까지 창출하면서 지역 사업으로 공동협력의 길을 모색했다. 또한 농촌여성과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영양특별사업을 전개하며 식생활운동과 생활개선운동을 펼쳤다.



여성들의 다양한 직업개발 및 훈련과 무료직업상담실운영은 저소득층 여성들의 경제자립을 도모하고, 직업분야에서 남녀평등의식과 성별의 벽을 허무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기회의 평등, 고용의 평등을 위하여 여성의 능력을 개발하고, 제도개선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는데 25세 조기정년제 폐지운동을 꼽을 수 있다.

또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여성운동에 있어서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장애우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자원봉사활동을 확대시켜 가고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 확충에 힘을 쏟았다. 공공시설에 장애자를 위한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제도화할 것을 건의하고 김포국제공항을 비롯한 몇몇 공공시설에 장애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성사시켰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과 함께 캠프를 하고 더불어 사는 훈련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일일 찻집 등을 열어 이들을 위한 기금 마련 프로그램들도 가졌다.


급격히 성장한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의 격동기 속에서 기독청년여성회원 운동체로서 중도 화해자 역할을 수행하는 봉사 조직으로 내부 정체성을 정리한 한국Y는 활발한 연대운동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고유한 운동들을 전개해 갔다.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이때 Y 역시 고문근절 등을 촉구하고, 365일 철야기도운동을 펼치며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이 평화운동은 전쟁장난감 제작중지 요구, 북한여성과의 만남 추진 등 통일운동으로 이어져 두 차례(연변, 뉴욕)의 한민족여성대회를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1987년 고용평등법 통과 이후 시행된 시범직장탁아소 10개 중 6개를 Y가 설립하여 직장탁아의 모델을 창출하고, 지역탁아모를 훈련하여 탁아운동에 기여했다. 또 여성의 직업능력개발과 취업확대를 위해 일하는여성의집(현 여성인력개발센터) 사업을 개발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노동부 지원사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 동안 Y가 펼쳐왔던 여성직업개발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현실 개혁을 주장하며 어린이 철학교육 등 인간 중심의 창조성 개발에 역점을 두는 대안교육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전인교육 차원에서 어린이 철학교육, 어린이 만화 모니터링 등을 실시했다.

또 합성세제 정량 쓰기, 수은전지 수거운동, 쓰레기 재활용방안 및 분리수거운동 등 환경운동을 벌였는데 Y가 독자 개발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받아쓰고, 다시쓰기)사업은 대표적인 전국민의 생활실천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생명운동차원으로 확대된 소비자운동은 양담배불매운동, 바른삶실천운동으로 이어졌다. 전국 회원 모두가 참여한 바른삶실천운동은 절제와 분수에 맞는 생활을 강조하며 혼수 줄이기, 돈봉투 근절운동, 퇴폐향락문화추방운동, 인신매매추방운동으로 펼쳐졌다. 이것은 우리농산물먹기운동과 우루과이라운드반대운동까지 이어져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YWCA 100주년 기념 YWCA 세계대회를 성공리에 마침으로 한국Y 위상 정립은 물론 더욱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전국의 회원들이 한 목소리를 냈던 바른삶실천운동은 개인의 작은 변화가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긍심을 우리들에게 안겨주었다. 더구나 IMF파동 이후 나라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공동체의식 회복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 건설이라는 Y의 목적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던 통일운동은 구체적인 실천운동으로 확산되어져 갔다. 수해로 고통받는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를 보내고, 혹한으로 고생하는 북한동포에게 내복을 보냈으며, 통일이후 우리와 북한 주민의 가교역할을 담당할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상담활동 및 취업훈련을 전개해가고 있다.



한편 매년 각 회원Y 모니터 회원들이 열성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사랑음식점 사업은 친환경음식점 업주들을 격려하고 음식물쓰레기의 양을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 녹색소비자운동이다. 이는 환경사랑가족신문공모전으로 이어져 가정에서의 음식물쓰레기줄이기 실천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젊은 지도력의 양성과 세계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해 국제자원활동연합캠프를 매년 개최하면서 외국의 대학생들과의 교류를 꾀하고 있으며 대학Y 회원운동의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만화공모전 사랑의 우체통, 또래상담활동, 청소년 사랑업소 선정 등을 통해 Y-틴 회원 운동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이루어졌던 사랑의 먹거리나누기운동은 계속 지속되면서 자원봉사 활성화를 이끌어냈으며 여성 가장을 위한 취업훈련 및 알선은 여성취업 확대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다해내고 있다.

한국YWCA가 창립80주년을 맞은 2002년 'YWCA는 평화를 만드는 힘입니다'는 주제 아래 전국의 회원YWCA들은 북한바로알기 및 북한이탈주민 돕기를 펼쳐가고 있으며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올바른 정치문화 형성에 앞장서 갈 것이다. 100년을 향하여 건강한 여성이 만드는 사회를 위하여 한국Y는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80을 새롭게 가슴에 새기며 내일을 준비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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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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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4 11:33:30

    고인숙위원님
    축하드립니다!!!!!
    취임식에 초대해주시고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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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2 21:23:01

    역시 큰엄마가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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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2 21:21:24

    이영길씨^^
    저희큰엄마이름 고진숙아니거든여?ㅋㅋㅋ
    제가알려드릴께여 고인숙이예요^^
    큰엄마 축하드려요 근데 실물이더이쁜것같아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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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2 21:18:41

    큰엄마 정말 최고예요 ^ ^
    존경스럽구.. 자랑스러워요
    역시 큰엄마 다워요 !! 사랑해요
    예쁜반 경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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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man2007-02-22 19:32:11

    와이엠씨에이에 대한 소개글도 고맙구요,,,좋은분같아요,,,,,회장님,,기대할래요,,우리 서로 사랑의 논산 가꾸어가요,,,"사랑숲",,생소한용어지만 푸근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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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man2007-02-22 19:30:23

    아직 낮선분같네요,,,그러나 논산발전,,어려운 이웃들위해 힘써주실줄 믿습니다,모습이 참우아하시네요,,,,,지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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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2 14:47:52

    고진숙님,,회장취임을 축하합니다,,,부디 논산위해 좋은일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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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연산중학교, 사제동행 어울림 한마당 운영 연산중학교, 사제동행 어울림 한마당 운영  연산중학교(교장 김진구)는 지난 23일(화) 전교생을 대상으로 논산시청소년문화센터에서 주관하는 찾아가는 청소년 문화강좌 ‘사제동행 어울림 한마당’를 운영했다고 전했다.  찾아가는 청소년 문화강좌는 건강한 학교생활, 관계 형성 및 친밀감 증진, 공동체 의식 강화를 위해 학...
  6. "이변은 없었다"논산농협 조합장 선거 기호 4번 윤판수 후보 당선 5월 3일  치러진 논산농협 조합장 보궐선거에서  기호 4번 윤판수 후보가  총 투표수  2.775 표중  1338표를 얻어  압승의  영광을 안았다.  조합장으로서의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선거에서  이변을 노렸던 기호 3번  신석순 후보는  681표를  얻어  차점 낙선의  불운을  ...
  7. 2024 화지전통시장 옛살비 야시장 개막 , , 공직사회 총출동 ,,,, 논산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편의 하나로  화지시장  상인회에  예산을 지원해  시행하는  2024년  엣살비  야시장  개막식이  5월  3일  오후 5시  화지시장  제2주차장    광장에서  열렸다. 백성현  논산시장 서원 논산  시의회  의장  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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