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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왕[龍門王] 통[通]이 궁궐에 들어가 태평12책[태평한 세상을 위한 열두가지 정책]을 건의했으나 황제가 활용하지 않았다. 이에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 통이 황하와 분수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자 먼 곳에서 모여드는 학생이 매우 많았다.
그 뒤 여러차례 벼슬을 제의받았으나 응하지 ㅇ낳았다. 양소가 그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 벼슬을 하도록 구너하였으나 통은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이 있어서 비바람을 가릴 수 있고 척박한 땅이 있어서 죽은 먹을 수 있는 데다 ,글을 읽고 성현의 도를 담론하니 스스로 즐길만 하오 .
원컨대 현명하신 공께서 행실을 바르게 하고 천하를 잘 드스리며 ,사계절과 날씨가 평온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면 저는 많은 은혜를 받겠지요. 그러므로 벼슬을 원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소에게 통을 참소하였다.
"통 그자가 정말로 공에게 불손한데 ,공은 왜 통을 존경합니까?" 양소가 통에게 이 말을 그대로 옮기고 물어 보니 통이 대답했다."만약 공께서 거만히시면 제가 옳은 것이요,거만하시지 않다면 제가 그른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전적으로 저에게 달려 있으니 공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양소는 이후에도 처음과 같이 통을 대접했다.
제자 겨경이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묻자 ,통이 "반박하거나 변론하지말라 "고 했다. 또 원망을 그치게 하는 비결을 물으니 "남과 다투지 말라 "고 했다.
통이 일찌기 다음과 같이 말했다."사면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형벌이 공평해지고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둬들이는 나라는 반드시 재물이 감소 될 것이다.
또 말했다. "비방을 듣고 분노하면 참소를 끌어들이는 짓이고 칭찬을 듣고 기뻐하면 아첨을 불러들이는 고리이다. 참소의 유인을 끊고 아첨의 매개를 없애야만 참소와 아첨이 멀어지리라 "
통은 대업[수양제 제위기]말기에 집에서 죽었는데 문인들이 그의 시호를 문중자[文中子]라고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