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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 치어 유명을 달리한 이는 필자의 큰 아이 고교 동창생이 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쩌다 아들아이와 함께 집에 들리기도 했던 그는 해맑았다. 말수는 적었지만 이웃을 배려 할줄 아는 이였고 세상과 함께하는 꿈을 차근히 준비하는 그런 학생으로 기억된다.
그의 죽음을 놓고 이해가 엇갈리는 사람들의 치열한 자기변명이 역겹다. 그러나 이미 문겸이는 짧은 생을 마감 했다. 스스로 택한 것이든 사고사였던간에 꿈많은 그가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1년동안 형언키 어려운 과로와 이상한 조직문화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에 시달렸던 건 유족들의 증언에서 나타난다.
가족들이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 업무에 대해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 " 회식자리에서 술을 못먹는다하면 억지로 먹이거나 수모를 주기도 했다" "휴일은 없었고 평일도 밤 10-11시근무가 다반사였다" 고 생전의 그는 괴로워 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공채를 거쳐 임용된 자리를 박차고 " 새로운 삶의 진로를 고민한다"고도 했다고 증언 했다.
허탈한 심정을 지울 길 없다.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명예로운 직[職]임이 분명할 자리에서 그 무엇이 그를 그토록 허탈하게 했을까? 그 무엇이 "사회의 빛이 되겠다던 " 그 맑고 청순한 청춘의 꿈을 짓밟았을까?
가슴이 저려오는 자들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구태한 조직의 문화 그 일그러진 모습이 더 계속되지 않도록 치열한 지기반성이 있어야 할 일이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잊지말라 . 그대들 가슴 한켠에 그의 외침을 새겨두어라.. 그래서 거듭 태어나는 공직사회 ..진정한 화[和]와 합[合]으로 거듭 날 결의를 다지라 !
다시한번 고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며 그를 영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