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낙서로 얼룩진 경복궁…매직으로 '트럼프' 쓴 70대 붙잡혀(종합)
'경복궁 얼굴' 광화문 아래에 검은 글씨 뚜렷…가로 1.7m 면적 달해
레이저 기기 등 장비 동원해 제거 작업 중…"오늘 안에 지워질 듯"
2023년 담장 '테러' 이후 대책 내놨지만…국가유산 관리 '빨간 불'
광화문 석축에 선명하게 남은 매직 낙서 (서울=연합뉴스) 11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 석축에 남겨진 매직 낙서 흔적.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전 광화문 석축에 낙서를 한 79세 남성을 현장에서 확인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2025.8.11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2023년 말 스프레이 낙서 '테러'로 한차례 곤욕을 치렀던 경복궁이 또다시 낙서로 얼룩졌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인 경복궁에 낙서 사건이 또 발생하면서 국가유산 관리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유산청은 11일 출입 기자단에 보낸 문자 공지에서 "오전 8시 10분경 경복궁 광화문 석축에 낙서를 한 사람을 발견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광화문 인근을 순찰하던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 소속 근무자가 낙서하던 김모(79) 씨를 확인했다.
경복궁 또 다시 낙서 테러, 낙서 지우는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관계자들이 11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 석축에 남은 낙서를 제거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전 광화문 석축에 낙서를 한 79세 남성을 현장에서 확인해 경찰에 인계했다. 2025.8.11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김씨는 광화문에 있는 3개의 홍예문 가운데 좌측과 중앙 사이에 있는 무사석(武沙石·홍예석 옆에 층층이 쌓는 네모반듯한 돌)에 검은 매직으로 글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민과 세계인에 드리는 글'이라고 쓴 뒤 그 아래에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쓰던 중 경복궁관리소 관계자에게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자가 적힌 범위는 가로 약 1.7m, 세로 0.3m에 달한다.
매직으로 쓴 '트럼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1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 석축에 남겨진 매직 낙서 흔적.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전 광화문 석축에 낙서를 한 79세 남성을 현장에서 확인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202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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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이날 오전 광화문 앞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낙서를 제거하는 중이다.
궁능유적본부 측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보수 공사 중"이라며 "작업 중 안전 등의 문제로 관람을 통제하오니 양해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안내했다.
실제 현장에서 본 낙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국'이라고 적힌 글자는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석재 표면으로 일부가 스며든 모습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소속 보존 처리 전문가 5∼6명이 동원됐으나, 약품으로 쉽게 지워지지 않아 레이저 기기를 동원한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레이저 기기 작업 준비하는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1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 석축에 매직으로 쓴 낙서를 지우기 위해 문화유산 보존처리 업체 관계자들이 레이저 기기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202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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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기기를 대여하는 경우, 하루 비용만 해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소실됐고, 이후 복원한 것이다.
궁능유적본부 측은 낙서 피해를 본 석재가 언제 조성했는지 파악 중이다.
경복궁은 1년 8개월여 전에도 낙서로 오염된 바 있다.
"광화문 보수 공사 중"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1일 서울 광화문 앞에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과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전 광화문 석축에 매직으로 낙서를 한 70대 남성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202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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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말 10대 청소년이 '낙서하면 30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경복궁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에 스프레이 낙서를 남겨 사회적 공분을 샀다.
국가유산청은 당시 이 낙서를 지우는 데 약 1억3천100만원이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경복궁 담장 낙서를 사주한 30대 남성은 중형을 선고받았으며, 10대 낙서범 역시 장기 2년, 단기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않아 모방 범죄를 저지른 20대 남성에게도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2023년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경복궁 영추문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복궁의 얼굴인 광화문 바로 아래서 낙서가 또 발생하면서 국가유산 관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가유산청은 경복궁 낙서 사건 이후 야간 순찰을 확대하고, 외곽 담장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를 증설하는 내용의 대책안을 내놓았으나 또 다른 낙서를 막지 못했다.
광화문은 이른 시간에도 수많은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이 오가는 장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관리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복궁관리소 측은 낙서 제거 작업을 위해 오후 1시에 예정돼 있던 광화문 파수 의식을 취소했으며, 수문장 교대 의식은 약식으로 진행했다.
경복궁 낙서테러 사건 개요 설명하는 경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가유산청은 경복궁을 훼손한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에 따르면 문화유산에 낙서를 한 사람에게는 원상 복구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복구에 필요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근무자가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즉각 조치한 것"이라며 "보존 처리 전문가들이 투입돼 오늘 중으로 낙서가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우리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모멘트] 깨끗해진 경복궁 담장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신현우 기자 = 4일 오전 낙서 제거 작업을 마친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 인근 담장을 따라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 위)
사진 아래는 지난해 12월 16일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경복궁 서쪽 담벼락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쓰인 낙서. 2024.1.4 [THE MOMENT OF YONHAPNEWS] nowwe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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