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에서 본 삶
- 김은숙
들녘에 나가면 늘 삶을 배운다
올해 농사는 끝이라고 하던 봄
빈 가을 들녘은 없었다
내리쬐던 햇볕으로
이내 누렇게 뜬잎 지던 벼 잎들
겨우 목이나 축일 정도의 논바닥에
하나씩 머리를 질러 박고
가진 것을 아껴 가며
언제 그렇게 열매들을 키웠는지
목이 말라도
볕이 뜨거워도
서로 먼저 익어 가겠다
앞 다투는 것이 없다
가지 맨 끝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순서를 기다리며
열매의 익음을 기다린다
알알이 그 많은 포도 알도
여기저기 들쑥날쑥
익어 가는 법이 없다
가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맛이
그 포도의 익음을 알 수 있듯이
자연의 어떤 것도 서로 앞 다투는 것이 없다
모두 함께 가자 손을 잡는다
뒤에 있는 것이 앞서 가는 것을 원망하지도
뒤 따라오는 것을 외면하지도 않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순서를 기다린다
맨 끝에까지 한 방울의 물이라도 건네준다
혼자만 익어 가겠다 혼자만 배부른 것이 없다
가을의 들녘에 나가 나의 순서는 어디쯤인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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